큰 고비 넘겼지만 체력 회복 먼 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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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24면

금융위기의 공포가 세계를 짓누르던 지난해 12월 한 금융지주회사가 자체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했다. 돈줄, 특히 달러 공급이 막히고 기업 연체율이 가파르게 높아지는 최악의 경우를 대입해 보니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이 5~6%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비율이 8%를 밑돌면 공적자금을 받아야 하는 부실은행이 된다.

한국 은행들도 한숨 돌리나

지주사 관계자는 당시 “상상도 못했던 일이 잇따라 터지는 상황에서 평상시 수치만 믿다간 간판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며 “건전성 관리와 경비 절감 등 ‘생존 모드’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넉 달이 지난 지금 은행들의 위기감은 많이 누그러졌다.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지주사는 올 1분기 1937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전 분기(3248억원 적자)보다 많이 좋아졌다. 빌려준 돈을 떼이게 될 경우에 대비해 쌓는 충당금이 생각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에 이어 1조원 정도는 될 것으로 예상됐던 우리은행은 1분기에 6266억원을 쌓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국민(6200억원)·신한(4260억원)·하나(5405억원) 등도 예상보다 적었다. 달러 조달에도 숨통이 트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9%에 육박하던 은행들의 외화채권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도 2~3%로 떨어졌다. 지난달 국내 은행의 대외채무 만기 연장률은 110.8%였다. 갚는 돈보다 새로 빌리는 돈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국내 은행의 순이자 마진(NIM)은 지난해 4분기 2.31%에서 1분기 1.91%로 급락했다.

금리가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자금 조달은 고금리로, 대출은 저금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한은행(1.66%)·우리은행(1.91%)·하나은행(1.60%) 등의 비율이 낮다.

반면 연체율은 고공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1분기 0.65%에서 올해 1분기 1.05%로, 우리은행은 같은 기간 0.58%에서 1.30%로 각각 높아졌다. 지난해 4분기에 비하면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 실적도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초라해진다. 하나·외환은행은 적자로 돌아섰고 나머지 은행의 순익도 70% 이상 감소했다.

구조조정도 이제 막 시작이다. 조선·해운·건설에 이어 대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거론되고 있다.

충당금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죽을 고비를 한번 넘겼지만 그렇다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설 정도로 건강하지는 못한 게 지금의 한국 은행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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