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이 곧 티켓파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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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호 07면

사람들은 뭘 보고 공연을 선택할까. 신문에 난 소개나 리뷰 기사? TV 등 영상 매체 광고?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설문조사가 있다. CJ엔터테인먼트가 7000여 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 작품 선택 시 무엇을 참고하는가”라고 물었다. 응답자의 무려 44%가 “주위 사람들의 입소문”이라고 답했다. 그 다음이 “인터넷 예매 사이트의 리뷰나 평점”(17.6%)이었다.

최민우 기자의 까칠한 무대

최근의 입소문은 예매 사이트 관람 후기를 중심으로 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른바 입소문의 디지털화다. 결과적으로 이미 본 관객들의 인터넷 관람평이 작품 선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작품 선택 시 영향을 미치는 리뷰”라는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하다. 예매 사이트 리뷰(33%)가 가장 많았다.

왜 그럴까?
공연은 영화와 달라 비용이 꽤 많이 든다. 적게는 2만~3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을 훌쩍 넘는다.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결국 티켓을 직접 구입하는 예매 사이트에 들어와서도 바로 예매하는 게 아니라 이미 본 사람들이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를 최종적으로 점검한다는 얘기다.

“예매 사이트 관람 후기가 가장 파워풀한 매체”라는 건 이미 공연업계에선 공공연한 사실이다. 최근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나 ‘드림걸즈’가 가장 극명한 예다. 두 작품은 유명 연예인의 출연으로 화제가 됐다. 그러나 막상 공연이 시작된 뒤 그들의 연기력과 노래에 대한 댓글은 후하지 않았다.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 식의 적나라한 표현이 관람 후기로 떴다. 탄력이 붙던 티켓 판매가 정체되는 건 물론, 오히려 확 빠져나갔다.

제작사들로서도 손놓고 볼 수만은 없게 됐다. 관람 후기에 대한 ‘관리’는 이젠 마케팅의 ABC다. 나쁜 관람평을 희석하기 위해 “그래도 꽤 볼 만한 작품”이란 식의 댓글을 제작사들이 직접 올리곤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올린다. 이른바 ‘도배질’이다. 그래야 초기 화면에서 악평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네티즌, 만만치 않다. 이런 제작사의 의도적인 댓글을 곧바로 눈치챈다. 관람 후기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다. 공연을 보고 관람평을 쓰면 ‘예매’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반대로 공연을 보지 않은 사람이 관람평을 쓸 때엔 이런 표시가 없다. 따라서 ‘예매’라는 표시가 없이 좋은 관람평이 뜨면 “너 제작사 알바 맞지?” 등의 댓글이 어김없이 달리곤 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제작사들은 좋은 댓글을 완벽하게(?) 달기 위해 아예 100여 장의 티켓을 별도로 구입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됐다.

물론 인터넷 관람평에 의해 판매가 휘둘리는 게 올바른지에 대해선 우려가 있을 수 있다. 댓글은 대부분 객관성·중립성이 결여된 채 지나치게 주관적으로 흐르곤 한다. 특정 배우에 대한 인신공격성 글도 많다. 그러나 대중은 이미 기자나 평론가 등 전문가 그룹의 두루뭉술한 리뷰보단 비슷한 눈높이 관객들의 어설프지만 직설적인 화법을 선택의 기준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위력은 공연계도 예외가 아니다.


중앙일보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 타고난 까칠한 성격만큼 기자를 천직으로 알고 있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더 뮤지컬 어워즈’를 총괄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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