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요양시설, 시골은 싫어 대도시가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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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구립노인케어센터 2층 물리치료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물리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팔 근육 강화 운동을 하고 있다. 바깥쪽 테라스에는 할머니 서너 명이 일광욕을 즐기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들은 치매나 중풍에 걸려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상 생활이 힘든 노인이다. 이런 노인 62명이 살고 있다. 2008년에 건립돼 최신 시설을 자랑한다. 체력단련실·특수목욕실·일광욕장 등의 시설과 구청이 운영한다는 점 때문에 인기 만점이다. 정원보다 훨씬 많은 104명이 대기자 명단에 올라가 있다.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에서 문의가 들어온다. 이 시설 원유순 원장은 “1년 넘게 기다려도 들어오기 힘들 정도”라며 “할 수 없이 서울 사람만 대기자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15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이 불편한 김승수(83)씨는 사설 복지시설을 옮겨 다니다가 올 1월 이곳으로 왔다. 김씨의 딸 승자(62)씨는 “집이 가까워 아버지를 곁에서 모실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6개월 넘게 기다렸다”며 “자주 뵙고 상태를 살필 수 있으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해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시행하면서 대도시 외곽의 요양시설이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 예상은 빗나갔다. 대도시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치매·중풍에 걸린 노인들이 자녀들이 사는 대도시 시설을 선호한다. 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응급 처치를 받을 수 있는 큰 병원 옆에 있기를 원한다. 장기요양보험은 전 국민이 일정액의 보험료를 부담하고 치매·중풍에 걸린 노인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수발 서비스를 받는 제도다.

6일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6개 광역시에 있는 요양시설은 정원을 채우고 정원의 10%가 대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에서 대기자가 가장 몰리는 서울의 경우 144개 요양시설(정원 5700명)의 대기자가 3300명에 이른다. 전국에서 제일 대기자가 많은 곳은 성동구다. 정원의 두 배가량이 넘는 대기자가 있다.

반면 중소 도시에는 정원의 83.6%만 차 있다. 군 지역은 80%밖에 차지 않았다. 한국치매가족회 이성희 회장은 “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면서 부담은 줄었지만 가고 싶은 시설에 갈 수 없는 문제가 생겼다”며 “도시 지역에 질 좋은 시설이 늘어나도록 정부가 지원금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 김철수 요양보험운영과장은 “주민들이 주택가에 요양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기피하기 때문에 도시에 시설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기헌·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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