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뇌물수수' 일본 대장성 강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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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즘 며칠 새 일본 대장성이 초토화했다.

미쓰즈카 히로시 (三塚博) 대장상과 관료출신으로는 최고자리인 사무차관이 경질되고 금융검사국 핵심요원들이 구속됐다.

금융검사실장 집에 검찰 수색요원들이 들이닥쳤고 은행국 간부는 자살했다.

대장성은 말 그대로 초상집이 됐다.

예산.금융.국세 등 경제 3권을 틀어 쥐고 '관청중의 관청' 으로 군림해 온 대장성이 도쿄지검 특수부의 칼날 아래 처참하게 쓰러지고 있다.

정치권.언론까지 비난대열에 합류해 대장성은 사면초가 (四面楚歌) 신세다.

검찰의 수사구도는 단순하다.

금융검사를 앞둔 민간금융기관들이 대장성관료들에게 과잉접대를 베풀었느냐에 수사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금까지 뇌물이 따르지 않는 음식.술 접대는 당연시해 왔던 것이 대장성의 오랜 관행이었다.

그러나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런 관행에 뇌물수수죄를 적용하고 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접대자리에서 오간 비리가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금융감독을 맡은 직원이 "언제 어느 지점에 검사를 나간다" 는 직무상 비밀을 공공연히 흘리는가 하면 다이와 (大和) 은행 뉴욕지점을 검사하러 해외출장을 떠난 공무원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과 골프에 열을 올렸다.

대장성의 한 핵심국장은 야마이치 (山一) 증권 부사장에게 "우리 눈에 안 띄는 해외지점에 손실을 감춰 놓으면 될 게 아니냐" 며 범죄행위를 부추기기도 했다.

그러나 대장성의 침몰은 '정책실패에 대한 문책' 성격이 강하다.

멀리는 거품경제의 발생과 붕괴,가까이는 현재의 금융불안과 경기후퇴에 모두 대장성의 잘못된 상황판단이 큰 몫을 했다.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총리는 "일본경제는 이미 회복중" 이라는 대장성의 판단에 의존해 "내수를 확대하라" 는 미국의 요구를 물리치고 지난 2년 동안 각종 경제개혁조치를 밀어붙이다 심각한 난관에 부닥쳐 있다.

대장성 위기의 심각성은 후임 대장상 인선 진통에서도 알 수 있다.

대장성이 당분간 '공적 (公敵) 1호' 로 비난의 표적이 될 것이 분명해지자 적임자들이 모두 자리를 사양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결국 검사출신의 마쓰나가 히카루 (松永光.69)가 신임 대장상에 올라 대장성의 대수술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자민당은 30일 신임 대장상에 검사출신으로 통산성장관을 지낸 10선의원 마쓰나가 히카루를 내정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신임 대장상에 모리 요시로 (森喜郎) 자민당 총무회장 등을 검토했으나 대부분이 정치적 이미지 타격을 우려, 거부하는 바람에 진통을 겪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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