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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주년 맞는 메드베데프 ‘푸틴 그늘 탈출’ 힘겨운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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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7일로 취임 1주년을 맞는다. 전임인 블라디미르 푸틴에 의해 후계자로 낙점돼 크렘린에 입성한 그는 총리로 물러앉아 수렴청정을 계속하고 있는 푸틴과 이중권력 체제를 꾸려 왔다. ‘푸틴의 꼭두각시’로 머물 것이란 당초 예상과는 달리 메드베데프는 최근 들어 자신의 자유주의적 정치색을 드러내며 조심스러운 독자 행보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실권은 여전히 푸틴 손에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국내 정치에선 독자 행보 추구=메드베데프의 ‘홀로서기’ 시도는 국내 정치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우선 푸틴의 권위주의와 차별화되는 민주적 조치들을 잇따라 취하고 있다. 취임 일성으로 법 질서 회복을 강조했던 그는 지난해 말 반부패법을 통과시킨 뒤 ‘부패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공직자 재산 공개법을 만들어 자신이 먼저 개인 재산을 공개하기도 했다. 또 인권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푸틴 내각의 국가 반역죄 처벌 강화 법안에 대해 재검토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크렘린 웹사이트에 개인 블로그를 개설한 그는 최근 세계 최대 블로그 사이트인 미국의 ‘라이브 저널’ 러시아판에 자신의 블로그를 등록하고는 국민과의 직접 의사 소통에 나섰다. 지난달엔 취임 후 첫 국내 언론 인터뷰를 크렘린에 가장 비판적인 신문 ‘노바야 가제타’와 해 자유 언론의 중요성에 대한 소신을 과시하기도 했다.

정치적 입지 강화를 노리는 메드베데프에게 가장 큰 시련은 역시 경제위기다. 푸틴 집권 8년 동안 7%대의 고도 성장을 누리던 러시아 경제는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최악의 혼란에 빠져 있다. 3월 실업자 수가 710만 명을 넘어서면서 실업률이 9.5%에 이르고 있다. 지난달 말 ‘레바다 센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메드베데프에 대한 지지율은 68%로 지난해 8월의 83%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경제난이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외교는 푸틴 노선 고수=메드베데프의 외교는 푸틴이 내세웠던 국익 우선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메드베데프는 지난달 초 영국 런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버락 오마바 미국 대통령과 만나 조지 W 부시 정권 시절 최악으로 치달은 양국 관계를 ‘리셋(재설정)’하기로 합의했다. 오바마의 유화 제스처에 화답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그루지야 전쟁 때나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 방어(MD) 계획, 옛 소련권으로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장 등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체코와 폴란드에 MD 시스템 구축을 강행할 경우 이 국가들을 겨냥해 핵미사일을 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방과 협력은 하되 러시아의 국익이 침해되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실권 쥐고 있는 푸틴=모스크바의 정치 분석가 미하일 레온티예프는 “메드베데프는 푸틴 대통령 시절의 주요 정부 인사 가운데 6분의 1 정도만을 자기 사람으로 바꿨을 뿐”이라고 밝혔다. 올 3월 여론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12%만이 메드베데프가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있다고 답 했다. 푸틴의 대통령 복귀설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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