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구제금융기를 넘기는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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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원불교 초기의 창립정신은 일반적으로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이소성대 (以小成大) , 둘째 근검저축, 셋째 일심합력, 넷째 무아봉공이다.

청천벽력 같은 구제금융의 비극을 맞이한 현실을 위해 이 창립정신은 하나의 좋은 처방일 수 있다.

이소성대는 모든 큰 것은 작은 것으로부터 생겼다는 생각이다.

한국의 금융위기도 작은 생각들의 잘못이 축적돼 나타난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금융위기가 온 데는 결정적 원인제공을 한 그룹이 있었다고 보는 시각도 정당하고 크게 반성해야 하겠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우리 한국사회라는 그룹이 이런 금융위기를 겪지 않는 그룹에 비해 무엇인가 모자란 점이 있어 당하는 인과가 아닐까. 어쨌든 국제적 신용 상실은 심각한 현실을 낳았다.

자고 일어나면 줄줄이 이어지는 기업의 부도설, 튼튼하다던 대기업까지 구조조정이라는 난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어려운 때일수록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 해결의 길이다.

큰 물줄기는 큰 물줄기대로 돌려놓아야 되겠지만 조그마한 희망들도 잘 가꾸면 큰 희망으로 탈바꿈하는 이치가 있다.

금모으기운동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다.

방만하던 해외여행과 씀씀이도 국민이 긴장하고 줄이기 시작하니 바로 관광무역 수지가 흑자로 돌아섰다.

무역도 오랜만에 돌아서고 있다고 기뻐하고 있다.

물론 정식으로 빚을 청산하고 한국 경제를 일으킬 무역이나 기업이 아직은 잘 작동하지 못하고 있으나 조그마한 긍정적인 자랑거리라도 늘어나면 한국사회는 점차 자신감을 회복할 것이다.

현재의 어려운 한국사회를 바로세우는 일은 제몫 찾기가 아니라 문제를 풀 수 있는 공익적 자랑거리를 다퉈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파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근검저축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더욱 근면하고 검약저축하는 생활을 강화해야 이 구제금융의 비극으로부터 쉽게 해방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졸부식 의식구조로 무한경쟁 시대의 세계에 뛰어들어 오늘의 비극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진적인 기술축적도 없으면서 분수에 맞지 않게 기술선진국을 너무 쉽게 보고 거기에 감춰진 많은 함정과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세계를 여행하는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함께 정부.정치인.기업인.학생.국민은 우리에게 도사리고 있는 국가부도의 위험을 거의 걱정하지 않았다.

아침에 조깅하면서 보면 초등학교 운동장에 거의 매일 같이 쓸만한 물건들이 버려져 있는 것이다.

지금에 보면 대만은 아시아의 금융대란 속에서도 8백억달러 이상의 외화를 가지고 굳건히 서있다.

대만인의 과시형이 아닌 중소기업정신, 그리고 근면과 검약저축 정신에서 우리는 배워야 할 점이 많다.

국토가 좁아서이기는 하지만 타이베이 (臺北) 거리의 오토바이 행진을 보면 느낌을 주는 것이 많다.

개인에게도 그렇듯이 국가에도 부 (富)가 축적되려면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 다음 일심합력이야말로 우리가 이 구제금융의 치욕을 벗어나는 중요한 요소다.

근래 대통령당선자의 행보에서도 일심합력을 위한 강한 노력을 볼 수 있다.

신임 당선자 비서실장의 의외의 임명, 삼성 이건희 (李健熙) 회장에 대해 루머에 신경쓰지 말고 안심하고 기업에 전념하라는 격려, 대우 김우중 (金宇中) 회장의 사업상 회의 불참에 대한 양해와 격려, 기업오너 자산의 기업투자에 대한 권유 등도 이 시점에서 일심합력을 유발케 하는 하나의 좋은 행보로 보인다.

우리는 경제대란을 극복하기 위해 뜻을 함께 해야 하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그마한 일치도 지금에는 모두 소중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아 (小我) 를 버리고 공익이 서게 해야 모든 것이 살아날 것이다.

송천은 <원광대 총장>

◇ 필자 약력

▷62세

▷원광대 철학박사

▷미 예일.컬럼비아대 연수

▷원불교 원로 수위단원

▷원광대 대학원장.교학부총장.총장 (현)

▷저서 : '열린 시대의 종교사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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