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일성 사후 10년] 下. 개혁·개방 가는 길 '핵' 이 걸림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 북한은 경제회생을 위해 서방국은 물론 중국.러시아와의 관계개선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5일 방북 중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으로부터 받은 체스를 살펴보고 있다. [AP=연합]

"김일성광장 옆 평양미술관에서 토론회를 마치고 막 전시물을 보려는데 갑자기 정전돼 행사 일부가 중단되고 말았어요. 평양도 전기사정이 좋지 않아 제한송전이 실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2월 말 평양에서 열린 남북 역사학자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역사학자의 전언이다. 김일성 사망 이후 10년이 지났어도 북한경제는 이 같은 전력난을 타개하지 못해 위기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 조치 이후 주민들의 근로의욕이 높아져 생산성이 향상되고는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경제개혁=북한경제는 1990년 들어 사회주의권 붕괴와 에너지난.식량난 등으로 경제성장률이 98년까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특히 암거래 시장이 확산되면서 국영시스템이 사실상 붕괴돼 체제유지에까지 위협을 가하게 됐다. 그러자 북한당국도 계획경제 체제를 완화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도 개선하려는 개혁.개방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2002년 '실리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본격화된 경제개혁은 다음해 기존 농민시장을 공산품까지 취급하는 종합시장으로 개편하는 후속조치로 이어지면서 북한경제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통일부의 추계에 따르면 평양에 40여개, 전국적으로 300여개의 시장이 새로 들어섰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부족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 자연스럽게 시장을 이용하게 됐다.

북한 기업들도 과거와 달리 이윤을 내지 못하면 문을 닫거나 외국기업에 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김근식 연구 교수는 "북한 주민과 공장책임자들이 빠르게 '시장'에 적응해 가고 있어 과거와 같은 통제 경제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핵문제 해결이 관건=북한은 지난해부터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해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계획에는 '연료.동력문제 해결을 위한 3개년 계획'(2003~2005년)의 사업 완료을 비롯해 ▶식량 생산량 800만t을 목표로 한 농업구조 개선▶'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 동시 추진 등의 과제가 포함돼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계획 첫해인 지난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8%로 99년 이후 5년 연속 플러스 성장세를 이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대외무역도 23억9000만달러로 93년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를 보인 것으로 KOTRA는 집계했다.

그러나 북한이 경제개혁과 장기 개발계획을 통해 경제 정상화에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동원 가능한 '내부 예비 자원'은 사실상 바닥난 상태다.

북한당국은 지난해 '인민생활공채'를 발행해 400억원 규모의 자본을 조달했으나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신의주.개성.나선.금강산 등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외자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요원한 상태다.

통일교육원 권영경 교수는 "북한의 개혁.개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만성적인 공급부족을 해결해 물가상승을 억제하고 금융개혁 등 시장지향적 후속조치들이 이어져야 한다"며 "국내 자원 동원을 통한 성장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미국.일본 등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외부자금 도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창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