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꾸 검찰 판단 밖에 흘리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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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장세동·박철언·최형우·권노갑·박지원. 역대 정권에서 ‘2인자’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다. 노무현 정권엔 문재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정권의 2인자들과 달랐다. 그는 스스로 “정치는 체질이 아니다”라고 말해왔다.

2004년 2월 그는 ‘칭병’을 하면서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의 자리를 내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간 적이 있다. 그러나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2004년 4월 국회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자 그는 티베트 여행 중 대통령의 대리인이 되기 위해 부랴부랴 돌아와야 했다.

꼭 5년 뒤인 지금과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박연차 게이트’의 불똥이 노 전 대통령에게로 튀자 그는 렉스턴 승용차를 손수 운전해 봉하마을로 달려왔다.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의 포토라인 앞의 노 전 대통령 곁엔 5년 전처럼 문재인(전 대통령 비서실장·사진) 변호사가 서 있었다. 문 변호사에게 검찰 수사에 대한 노 전 대통령 측 입장을 들어봤다.

-노 전 대통령 탄핵사태 때도 대리인이었고 이번에도 대리인 역할을 맡았는데.
“1987년 대우조선(노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구속된 사건) 때도 그랬다. 허허허. 작은 것들은 그보다 더 많다.”

-소회가 어떤가.
“소회라…. 참 잘 모르겠다. 제가 법률가니까, 변호인으로서 돕게 되는 부분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되고…보람이라고 생각한다. 법률가가 아니었다면 말없이 성원을 보내고 있었겠지. 다만 언론하고 이 역할(대변인)을 하고 있는 것이 참 곤혹스럽다.”

-검찰 조사 후 “지금 문제 되고 있는 600만 달러가 노 전 대통령과 무관하다는 부분은 조금 명백해졌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한 이유는.
“(노 전 대통령) 가족이 한 일, 정상문 전 비서관이 한 일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져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께서 직접 관여했다거나 사건을 보고받은 적은 없었다. 검찰은 여러 정황을 제시하며, 대통령께서 이 사건에 관여했고 사전에 안 일인 양 질문을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일관되게 그렇지 않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일관되게 설명을 하는 과정을 통해 대통령께 보고가 없었다는 입장이 분명해지지 않았을까, 그것이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큰돈이 부인에게 전달됐는데 노 전 대통령이 몰랐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다.
“부부간의 일이니 부인이 하는 일을 남편이 알 수도 있다. 그런 의문은 당연하다. 그러나 많은 부부가 역할을 나누어 하는 부분이 있다. 상대가 하는 일을 모를 수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처음 변호사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는데, 1985년께부터는 인권변호·시국사건·노동사건에 집중하시면서 일반 사건은 수임하지 않았다. 20년 넘게 제대로 집에 생활비를 갖다주지 않았던 거다. 잠깐 영광(88년 국회의원 당선)도 있었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가정경제, 생활비 조달이나 아이 학비 마련하는 것, 이런 것들은 여사님이 쭉 담당해 왔다. 그렇게 오래 지속하고 대통령 되시고 난 뒤엔 국정에 몰입하다 보니까 유학자금 보낸다든지 이런 일들에 대해선 대통령이 아실 수 없게 된 것이다. (저는) 몰랐다는 것이 납득이 간다. 물론 박연차 회장이 (돈을 줄 때) 배경에 있는 대통령을 염두에 뒀다거나 대통령을 보고 줬다는 걸 제가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이 작용했으리라고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렇다고 노 전 대통령이 요구했다는 것은 아니다.”

-100만 달러의 용처를 밝히겠다고 했는데.
“대통령님이 조사받으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권 여사님이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자신도 분명히 기억을 못 하고, 시기가 앞뒤가 맞지 않고, 일부 말씀하신 부분도 분명치 않고 해서 여전히 모르는 것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이른 시일 내에 정리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요구해 돈을 줬고, 고맙다는 전화도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제 검찰도 많은 정황적 증거와 사실을 제시하며 신문했다. 만약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이 서로 진술이 다르면 청와대와 박 회장의 양쪽 통화기록을 제시한다든지 하면 쉽게 판가름나는 것 아닌가? 검찰이 많은 형사사건에서 그렇게 한다. 그러나 검찰은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의 진술이 다른 부분에서 박 회장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할 증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검찰이 박 회장의 진술 외에 확실한 증거가 있지 않다고 보나.
“지금까지 본 상황은, 박 회장 진술 외에도 여러 사정을 보고 판단을 했겠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수사를 지금까지 끈 것이 아닌가 보인다. 검찰이 뭔가 그렇게 믿을 만한 카드를 가졌는지는 나도 모른다.”

-만약 사실관계에 자신이 있었으면 왜 노 전 대통령은 박 회장과의 대질신문을 거절했나.
“검찰 수사하는 사람으로선, 그렇게 중요한 사람 간에 진술 차이가 있을 때 누구의 진술이 옳은지 가리기 위해 수사방향으로서 대질하려 한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는 대단히 무리한 요구였다. 난 전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본다. 기본적으로 아주 늦은 시간이었다. 대질조사를 하지 않고도 조사가 마무리된 시간이 새벽 2시였다. 밤 11시에 새롭게 대질조사를 했다면 밤샘조사가 됐을 상황이었다. 무리한 시간에 무리한 요구를 해 결국 변호인들이 반대의견을 낸 것이다.”

-노 전 대통령과 박 회장이 검찰 조사 도중 만나진 않았나.
“검찰이 박 회장이 대질을 위해 열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그냥 보내기는 뭐하지 않으냐, 대질은 안 하게 됐다고 알리고 서로 인사라도 하시라’고 해서 오게 했다.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안타까운 정을 표현하고 그랬다. 그 자리에서 박 회장이 ‘저도 대질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처음부터 박 회장이 대질을 거부했다고 제가 얘기하는 게 아니다. 다만 노 전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선 인사 차원이든 인간적인 차원이든 대질을 하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고, 그것을 전한 것이다.”

-몇몇 전직 각료는 이번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검찰을 비롯해 권력기관 독립을 추진했던 입장에서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나.
“검찰의 수사를 정치적이라고 해석하고 싶지 않다. 사실이 드러나면 검찰은 당연히 정의감을 갖고 수사를 해야 할 사항이다. 다만, 이런 걸 보면 조금…. 뭡니까. 박 회장 언제 구속됐나? 너무 오랜 시간을 수사하면서 조사가 한정 없이 늦어지고 있는 과정이라든지, 잘 조사해서 결과를 발표하거나 중간발표 형식을 취하지 않고 전례 없이 수사 과정을 매일매일 중계하듯이 발표하는 것, 검찰의 법적 결정 이전에 수사하는 사람의 판단을 (언론에) 내보내고 하는 행태는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사건이 끝나고 나면 검찰도 다시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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