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수록 콩 한 쪽도 나눈다는 의지 보여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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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호 24면

지난달 27일 종합여행사 모두투어의 임직원 월급통장엔 19만9100원씩이 입금됐다. 비상경영의 결과로 1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을 자축하는 회사 측의 ‘특별성과급’이었다. 한 사람당 900원씩 미리 뗀 세금을 합쳐 900명의 임직원이 받은 금액은 모두 2억원가량. 1분기 흑자액의 절반이다. “보잘것없는 액수지만 고통 분담에 동참한 임직원에게 한시라도 빨리 보상하고 싶었다”는 게 이 회사 홍기정(56·사진) 사장의 말이다. ‘기업은 사람이 끌어 가고, 사람은 사기를 먹고산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그를 서울시청 앞 프레지던트 호텔 5층 사장실에서 만났다.

전 임직원에게 20만원 성과급 준 모두투어 홍기정 사장

-다른 기업들은 현금을 한 푼이라도 쌓아 두기 위해 안달하고 있는데.
“여행업은 팀워크로 하는 사업이다. 상품 기획에서 고객 모집, 여행 관리, 뒷마무리까지 부서와 직원끼리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사기가 높지 않으면 이게 삐걱대고 회사의 존립마저 위협받게 된다. 제 식구도 감싸지 못하는 회사가 어떻게 고객들을 만족시킬 수 있겠나. 비상경영에 동참해 희생을 감수한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도 미룰 수 없었다. 지난해부터 원화가치가 급락하고 경기가 침체되면서 올 1분기 대부분의 직원이 한 달씩 무급휴직을 했다. 다른 업종에 비해 급여 수준이 높지 않은데도 묵묵히 이해하고 참아줬다. 어려울수록 ‘콩 한 쪽이라도 나눈다’는 의지를 보여 줘야 위기 극복도 앞당길 수 있다.”

-지난해 초 200여 명의 직원을 한꺼번에 늘린 게 더욱 부담이 되지 않았나.
“2007년까지 해외 여행객이 급속히 증가했고 이명박 정부가 기업 친화적 정책을 펼칠 거라는 기대감에 대규모 채용을 했다. 미국 무비자 입국이라는 대형 호재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오판이었다. 사람을 늘린 직후 쇠고기 파동이 터졌고 유가가 뛰어올랐다. 항공료보다 유류부담금이 더 비싼 기형적 상황이 벌어졌다. 태국의 정국 불안과 중국 대지진 등 악재가 겹쳤다. 2007년 143억 흑자가 지난해 10억 미만으로 급감했다. 그렇다고 책임을 직원들에게 돌릴 순 없었다. 지난 20년간 단 한 사람도 자기 뜻에 반해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없다.”

-한 달 월급을 못 받는 비상경영을 직원들이 쉽사리 납득했나.
“경영진이 먼저 모범을 보였다. 지난해 9월 과장급 이상 간부들에 대해 연봉 삭감을 했다. 과장급은 20%, 회장과 사장은 50%를 줄여 아랫사람의 피해를 줄이려 애썼다. 창립 때부터 해온 투명경영도 도움이 됐다. 매달 초 월요일 직원조회를 하면서 전달 경영실적을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한 달 한 달 악화되는 사정을 뻔히 본 직원들이 흔쾌히 동의해 줬다.”

1989년 국일여행사로 창립한 모두투어는 독특한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 17명의 창립멤버가 지분을 나눠 갖는 ‘종업원 지주제’로 출발했다. 2005년 코스닥에 상장할 때엔 전 직원에게 주식을 나눠 줬다. 다른 업종에서 거의 사라진 ‘계장’ 직급이 있을 정도로 위계질서가 뚜렷한 대신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각별하다. 회사 사정이 어려운 가운데 올 3월 창립 20주년을 맞게 되자 임원들이 사재를 털어 전 직원에게 그릇을 선물했다. 강성으로 분류되는 민주노총 소속의 노조가 있지만 10여 년간 분규 한번 겪지 않았다.

-위기를 극복하려면 고통 분담 이상의 전략이 필요할 것 같다.
“경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수익 다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주력은 내국인을 외국으로 내보내는 아웃바운드였다. 지난해 1월 모두투어인터내셔널을 설립해 외국인을 한국으로 끌어오는 인바운드와 내국인의 내국 여행인 인트라바운드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전 세계 여행객이 줄고 있는 가운데서도 일본 관광객이 30% 증가하고 원화가치 반등에 힘입어 5월 초 황금연휴 때 해외 관광객이 지난해보다 많아지는 등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여행업계 전체의 변화도 필요하지 않나.
“다른 산업에 비해 매출 대비 수익성이 낮다. 그런데도 최근 몇 년간 우후죽순 격으로 새로운 회사들이 생겨나 가격 경쟁이 치열했다. 제 살 깎기다. 멀리 봐야 한다. 한번 회사를 찾은 고객은 평생 고객이라는 마음으로 가격과 서비스 모두를 제공해야 한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미끼 상품으로 여행을 다녀온 고객은 부실한 서비스 탓에 다시는 그 회사를 찾지 않는다. 아웃바운드에 치우친 구조도 문제다. 2007년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해외 여행을 다녀왔지만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훨씬 적다.”

-인바운드 강화는 어떻게 해야 할까.
“비싼 호텔 요금과 물가를 낮춰야 한다. 특급 호텔 기준으로 단체 여행객 요금이 1박에 300~400달러다. 동남아는 물론 미국·유럽과도 경쟁하기 힘들다. 땅값 때문에 당장 낮추기 어렵다면 모텔과 러브호텔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호텔이 크다고 관광객이 드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온천 여관을 생각해 보라. 외국인에게 맞는 편의시설을 갖추면 모텔도 충분히 관광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인력 확충은 더 시급하다. 관광업 종사자 중 영어에 능숙한 사람이 아직 부족하다. 대표적 여행 사이트인 론리 플래닛에 가 보면 ‘한국은 볼 것도 많고 좋은 나라지만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면 찾기 어려운 나라’로 돼 있다. 지방 특급호텔은 소믈리에 한 명 없는 경우가 많다.”

-비용과 언어 문제가 해결되면 한국이 매력적인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얘긴가.
“그렇다. 관광은 에펠탑이나 피라미드 같은 랜드마크가 전부가 아니다. 보이는 것 이상의 역사와 문화·이미지를 파는 것이다.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이나 덴마크의 인어공주 동상,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을 ‘유럽의 3대 사기’라고 한다. 막상 가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이 끊이지 않는 것은 동화나 전설의 이미지를 현장에서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엔 유구한 문화가 있다. 외국인은 도심에 한강처럼 큰 강이 흐르는 것에 놀라고 남대문 시장의 돼지머리를 신기해한다. 과일을 한 알 한 알 닦아 예쁘게 진열하는 데 감탄한다. 건물의 단청 장식은 같은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 없다. 창덕궁 후원의 계단식 정원은 이탈리아 로마와 함께 세계에서 둘뿐이다. 이런 걸 차근차근 설명하면 외국인들이 얼마든지 매력을 느낀다.”

홍 사장이 자신 있게 이런 얘기를 하는 건 30년간 여행업에 종사해 왔기 때문이다. 건국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영어학원을 운영하던 그는 80년 전두환 정부가 들어선 뒤 과외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영어 통역안내원 자격을 따 여행업계에 입문했다. 83년 관광안내원 경진대회 금상을 타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여행사 사원부터 사장까지 한 단계도 빠뜨리지 않고 한 걸음씩 밟아 왔다. 그가 한국 여행업계의 장래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세계 경제가 되살아나면 여행업도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 한국은 사시사철이 뚜렷한 나라다. 아웃바운드와 인바운드 모두가 활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름철 피서 인파를 해수욕장과 계곡이 다 감당하지 못한다. 겨울 레저 수요를 충족할 만한 시설을 갖추기도 어렵다. 한철 장사여서 대규모 투자가 어렵다. 해외 여행객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거꾸로 뒤집어 보면 외국인을 끌어들일 가능성도 커진다. 금강산은 계절마다 이름이 다르다. 같은 장소를 네 번 방문해도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얘기다. 포장을 잘하고 의미를 부여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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