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무덤’ 된 재·보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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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4·29 재·보선 때문에 많은 여론조사 전문가가 당황하고 있다. 선거 결과가 여론조사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서 일정한 범위의 오차는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번엔 아예 조사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측이 빗나간 경우가 많았다. ‘여론조사의 무덤’이란 얘기를 듣고 있는 경주가 대표적인 예다.

모노리서치가 선거 전날인 4월 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정종복 후보는 38.1%로 무소속 정수성 후보(24.4%)를 여유 있게 따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리얼미터의 비공개 조사에선 정종복 후보가 8%포인트 우세했으며,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의 막판 조사에선 정 후보가 10%포인트가량 앞선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투표함을 열자 정수성 후보가 45.9%로 정종복 후보(36.5%)를 9.4%포인트나 앞섰다. 당 관계자는 30일 “지난해 총선 때도 정종복 후보가 여론조사에선 10%포인트 이상 앞서다가 개표에서 5%포인트를 뒤진 전례가 있어 설마 했지만 이 정도까지 뒤집히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다”고 털어놨다.

인천 부평을도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2~3%포인트 차이의 초박빙 승부를 예측했지만 결과는 민주당 홍영표 후보의 10.4%포인트 차 승리였다. 전주 완산갑 개표 결과 무소속 신건 후보가 민주당 이광철 후보를 18.1%포인트나 앞섰다. 하지만 이걸 예상한 기관은 거의 없었다.

재·보선에서 여론조사가 고전했던 적은 이번만이 아니다. 2007년 4·25 재·보선 때도 대전 서구에서 5%포인트 이내의 접전이 될 것이란 여론조사의 예측과는 달리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가 한나라당 이재선 후보에게 23.1%포인트 차이의 압승을 거뒀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디오피니언 안부근 소장은 “전국적 규모의 선거는 한 지역에서 편중 현상이 생겨도 다른 지역에서 이를 상쇄할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아 오류가 작아질 수 있지만, 특정 선거구만을 대상으로 하는 재·보선에선 오류를 교정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전국 단위 조사 때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조사 대상을 선정하지 않으면 엉뚱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재·보선 때 친야 성향의 유권자들이 투표에 더 적극적이지만 정작 이들이 여론조사에선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는다는 것도 조사기관을 난처하게 만든다. 이른바 ‘숨어 있는 표심’논란이다.

지역의 정치적 특수성도 이변을 만든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는 “24일 경주 조사 때 전체적으론 정종복 후보가 앞섰지만 ‘박근혜 지지층’만을 떼어 놓고 봤더니 실제 결과와 거의 똑같았다”며 “‘박근혜 바람’과 같은 변수는 여론조사에서 계량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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