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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SI, ‘광우병’ 전철 밟지 말고 차분히 대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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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국내에서도 돼지 인플루엔자(SI) 추정환자가 나온 데 이어 의심환자 숫자가 갈수록 늘어나며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보건소마다 예방약 구입 문의가 빗발치고 돼지고기 소비가 뚝 떨어졌다고 한다. SI가 고도의 경각심을 발휘해 대처해야 하는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신종 전염병인 데다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때보다 전파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염병 경보체계를 만든 이후 처음으로 경보 수준을 4단계로 격상한 것도 그래서다. 현시점에서 SI가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번질 위험이 현저히 증가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호들갑은 금물이다. 필요 이상의 공포심은 또 다른 위기를 부를 뿐이다. 우리는 지난해 광우병 사태에서 이를 충분히 학습한 바 있다. 주저앉는 소의 동영상과 함께 한국인이 인간광우병(vCJD·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에 걸릴 확률이 94%에 이른다는 불확실한 주장이 방송되면서 국민들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인터넷도 덩달아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모두 미친 소처럼 뇌에 구멍이 숭숭 뚫려 죽는다는 등 거짓 소문을 확산시키며 온 나라를 공황 상태에 빠뜨렸다. 그 바람에 사회가 분열됐고 국가적 경제 손실만도 수조원대에 달했다는 건 주지하는 사실이다.

SI사태에 대처하면서 그런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보건 당국과 전문가들의 권고대로 해당 지역 여행자 중 질병이 의심스러운 사람은 조속히 신고해서 검사를 받으면 된다. 환자로 밝혀져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수 있다. 추정환자로 분류된 50대 여성 환자도 타미플루 투약 후 증세가 호전돼 가고 있다. 일반인은 다른 독감과 마찬가지로 손을 열심히 씻고 몸을 피로하지 않게 하는 등 예방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 될 일이다.

SI가 돼지고기를 먹는 것과 무관함에도 돼지고기 소비를 기피하는 풍조도 어이없다. 광우병 파동 때 한우 소비까지 급감하는 바람에 애꿎은 한우 사육 농가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데 괜한 선입관으로 양돈 농가나 외식업계가 피해를 보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돼지를 떠올리게 하는 명칭을 바꾸자는 국내외의 지적에 일리가 있어 보인다. 일부에선 멕시코 인플루엔자(MI)로 바꾸자는 입장인 반면 특정 국가에 대한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국제사회가 절묘한 대안을 찾아서 근거 없는 공포와 편견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철저한 검역과 추적 조사로 신뢰를 주고, 국민은 차분하고 이성적인 대처로 협력하는 위기 극복의 새 모델을 정립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