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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법안 통과 발목 잡는 법사위 심사권한 없앨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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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법사위원회가 늘 말썽이다. 국회 상임위 가운데 법사위는 가장 중요한 위원회다. 모든 법안은 상임위 통과 이후 본회의에 상정되려면 법사위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법사위의 의사봉을 쥔 위원장은 야당 소속이다. 대부분의 법안이 다수당인 여당 주도로 만들어지는데, 막상 마지막 심사단계의 노루목을 야당이 지키고 있으니 충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야당 입장에서 법사위는 법안 처리를 막아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반면 여당 입장에선 법안 처리를 막는 걸림돌이다.

이번 국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위기라고 하면서도 법사위의 법안 발목 잡기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통합하기 위한 한국토지주택공사법 등 90여 건의 법률안이 법사위에 걸려 있다. 금산분리완화를 위한 법 개정 등 경제 살리기를 위해 시급한 법률들은 지난 2월 여야 원내대표들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고 합의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표류하고 있다. 토지주택공사법의 경우 야당이 통합 이후 본사를 야당의 텃밭인 전주에 두는 것을 조건으로 걸고 법안을 볼모로 잡고 있다고 한다. 각 당 대표가 합의해도 지켜지지 않고, 법안 내용과 무관한 이권다툼에 법안이 표류하는 작태는 청산해야 할 정치행태의 대표 격이다.

이런 법사위의 문제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야가 바뀐다고 달라지지도 않는다. 한나라당이 야당인 시절에도 법사위가 법안 발목을 잡긴 마찬가지였다. 문제가 구조적인 만큼 해법도 제도개선에서 찾아야 한다. 문제의 원인은 법사위에서 모든 법률안의 체계·자구를 심사하도록 만든 국회법 제86조다. 이 조항은 한국전쟁 당시인 1951년 엉터리 입법을 막기 위한 장치로 마련됐다. 법률전문가들이 모인 법사위에서 비전문가인 의원들이 만든 법의 일관성·정당성·합헌성 등을 확인하라는 취지다. 제대로 된 나라 가운데 이런 기능을 담당하는 상임위원회가 별도로 있는 나라는 없다.

이런 구시대적 국회법 조항은 사라져야 한다. 58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법사위 심사의 순기능은 사라지고 역기능만 남았다. 의원 개인의 능력은 물론 국회사무보조 기능이 향상돼 전쟁 당시처럼 엉터리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하진 않는다. 필요하다면 체계·자구를 재확인하는 실무적인 심사 기능은 국회사무처의 법제실에서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

마침 정치개혁특위가 이런 문제를 논의 중이고, 각 정당 연구모임과 국회의장실 등이 국회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여야는 당리당략을 떠나 진정한 국회개혁 방안을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