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4대그룹회장 회동]변신하는 재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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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머뭇거릴 겨를이 없다. "

金당선자의 재벌정책의 큰 틀이 드러남에 따라 대기업들의 생존을 위한 비상경영 행보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재계는 金당선자가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해소 등 재벌 개혁을 촉구하기 시작한 지난해까지만 해도 금융시장 마비 등 어려움을 들어 거세게 반발했다.

일부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하니 어디 한번 잘 해봐라" 는 식으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金당선자측이 개혁 요구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데다 노사정 (勞使政) 협의회 구성과 정리해고 논의가 진전되지 않자 당선자측의 정책에 적극 협력하겠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金당선자와 4대그룹 회장이 회동하기 전날인 12일 오후 전경련 고위임원은 金당선자의 최수병 (崔洙秉) 특보에게 전화를 걸어 "일부 언론에서 재계가 개혁에 반대하는 것처럼 비친 게 있지만 잘못된 것" 이라고 해명하기까지 했다.

4대그룹 회장들은 金당선자와의 회동 전날 "金당선자가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조금도 토를 달지 말자" 고 합의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4대그룹 회장들이 13일 金당선자와 5개항의 합의를 함에 따라 재계는 이제 구조조정의 급류를 탈 것으로 예상된다.

전경련 임원은 "기업들이 이날 합의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안 준비에 들어갔다" 며 "구조조정의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D그룹 기조실장은 "金당선자와의 합의안 실천을 위해서나 재벌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알짜배기 주력사업까지 파는 것을 감수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특히 그동안 생산능력 과잉으로 지목돼온 자동차.유화.조선 등에서 경쟁사와의 전략적 제휴, 외국인에 대한 지분 매각, 그룹내 합병 등이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는 최근 두산그룹이 3개 술회사를 합병하고 쌍용그룹이 미국에 있는 호텔을 매각한 것 등을 이같은 움직임의 신호탄이라 보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모든 그룹이 자금조달이 힘겨워 기업을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이라며 "외국자본에 내다파는 길을 차선책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

이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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