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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시대 2기를 준비한다]3.지자체 1기 대차대조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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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방자치가 실시된지 만 2년을 넘기던 지난해 7월말 전북무주군에서는 군청공무원 2백25명이 한꺼번에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 수료장을 받는 이례적인 광경이 연출됐다.

지자제시대에 걸맞은 공무원으로 거듭 태어나자는 취지로 마련된 강의에서 공무원들은 서울에서 초빙된 교수들로부터 일주일에 2번씩 지방자치를 배우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한국의 낙후된 시골에 불과했던 무주군에 95년7월 지방자치 실시 이후 나타난 변화는 이 뿐이 아니다.

권위주의적이던 군청 담장이 헐려나가는 대신 단장된 뜰이 주민휴식공간으로 제공됐으며 종합민원실에는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도록 컴퓨터가 설치됐다.

민선군수는 당선 직후 회계법인에 군의 재정진단을 의뢰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시한 결과 지난 2여년동안 48억원의 인건비를 줄이는데 성공했다.

또 무주가 무공해지역임을 알리는 '반딧불이 축제' 가 개최되고 이 곳을 '한국의 알프스' 로 가꾸는 각종 관광사업 개발이 진행됐다.

◇ 지자제가 가져온 변화 = 민선단체장 등장으로 전면 부활된 지방자치제는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시행착오와 긍.부정적인 엇갈리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른바 '풀뿌리 민주주의' 로 불리는 지방자치제는 ▶권력구조의 변화▶지방행정의 개혁▶균형있는 지역발전 뿐 아니라 국민 생활양식을 탈바꿈시킨 거대한 개혁의 흐름을 주도했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생활상의 변화는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민원서류의 전산발급을 비롯, 민원 후견인제.민원 택배제.행정사무착오보상제 등 자치단체들이 봇물처럼 쏟아낸 기발한 서비스 개선책들은 권위주의적 행정에서 대민봉사 행정으로 나아가는 초석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도 장애인 전용 우선 민원창구 설치와 백화점.아파트단지 등의 현장 민원실 운영, 보건소 의료서비스 개선, 무료법률상담소 설치 등은 행정 편의 대신 주민 편의를 앞세운 서비스 개선의 대표적인 성과로 꼽히며 지방자치제 정착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치단체들이 기업의 경영 마인드를 도입해 '내 고장 살찌우기' 에 온 힘을 기울인 것도 관선시대와 차별되는 점의 하나다.

제주도는 관광복권을 발행해 지난 3년동안 74억여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충남보령군은 대천해수욕장 등에 널려있는 진흙을 활용한 머드팩과 머드비누 등으로 지난 한해동안 12억원 이상의 짭짤한 수익을 거둬들였다.

한양대 조창현 (趙昌鉉) 지방자치대학원장은 "지난 연말 대통령선거에서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데는 자치단체의 공무원 중립이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며 "지자제는 정치발전의 측면에서도 긍정적 변화를 가져다주면서 우리 사회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고 총평했다.

◇ 부정적 평가 = 그러나 이같은 전반적인 긍정적 평가 속에서도 지자제의 시행착오와 부작용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중앙정부와 자치단체, 또는 자치단체간 갈등▶단체장의 독선과 전횡, 선심행정▶지방재정의 취약성▶자치권한의 한계▶지방의회 운영실태와 지방의원 자질 시비 등은 제도적 보완을 요하는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지자제가 실시된 뒤 드러난 선심행정의 유형은 도시계획 남발, 공해공장 설립 및 환경파괴행위 허가, 대규모 행사 남발, 과다한 장학금 지급 등 다양하다.

성남시는 지난해 3백억원의 장학금을 조성하려다 '선심성' 이란 비판을 받았으며 충북보은군은 농촌지역 준농림지에 러브호텔 건립을 억제하는 조례제정을 미뤄오다 결국은 국도변 곳곳에 러브호텔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결과를 낳았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자치단체간 갈등의 심화와 이같은 분쟁을 조정할 제도적 장치의 미비도 개선돼야 할 사항중의 하나다.

전남영광군의 원전 5, 6호기 건설과 관련된 정부와 지자체간 대립 및 지자체와 주민들간의 심각한 마찰은 대표적인 사례다.

◇ 해결해야 할 과제 = 이처럼 지방자치제는 많은 성과와 부작용을 함께 낳았으나 모처럼 싹 틔운 풀뿌리 민주주의를 잘 가꿔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명지대 정세욱 (鄭世旭) 지방자치대학원장은 자치단체의 인사권과 입법권.재정권 등 자치권한의 미비를 올 7월 이후 실시될 2기 지자제에서 반드시 해결돼야 할 과제로 꼽는다.

4급 서기관급 한 명 늘리는 데도 일일이 내무부로부터 제약을 받고서는 진정한 자치를 실현하기란 어려우며 이로 인해 자율성 없는 '반쪽짜리 자치' 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주민통제를 쉽게하기 위해 유달리 복잡하게 편성한 지방행정단위를 재편하고 주민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완하기 위한 '주민 발안제' 나 '주민투표제' 등의 도입도 풀어야 할 숙제로 제기된다.

조순 (趙淳) 전 (前) 서울시장과 이인제 (李仁濟) 전 (前) 경기지사의 대선 출마로 인한 자치행정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제도적 보완도 1기 지자제가 남긴 과제다.

문경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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