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고 나눠야 진짜 봄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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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분명 봄이다. 꽃샘추위는 물러간 지 오래다. 덥기가 여름 못지않을 정도다. 그러나 사람들은 저마다 몸을 잔뜩 움츠렸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팍팍한 삶을 강요하는 미증유의 경제난 탓이 가장 크다. 전직 대통령까지 연루된 부패 스캔들에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특별 초대석 # 종하 큰스님 부처님 오신 날 청정 법문

부처님 오신 날(5월 2일)을 앞두고 종하(71) 큰스님을 찾았다. 10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관음도량 서울 관악산 관음사에 주석하는 스님이다. 그는 한국 불교계의 대표적 선지식(善知識)으로 꼽힌다. 법랍 51년째 용맹정진을 멈추지 않는 이판승(理判僧)이다. 그러면서도 조계종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 의원 9차례, 두 번의 의장을 역임해 사판(事判)에도 밝다.

그래선지 불가와 속세의 일을 수시로 넘나든다. 법문은 쉽고 명쾌했다. 설법을 할 때면 부처님이 그랬듯이 4부 대중의 눈높이로 말하기 때문이다. 종하 스님은 “극락에도 겨울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자연이든 인간의 삶이든 늘 봄일 수는 없어. 세상은 순환하거든. 지금은 그 순환 중에 만난 어려운 때일 뿐이야. 더구나 이번엔 세계적 현상이잖아? 유독 우리만 겪는 일이 아니니까, 거기서라도 위안을 삼았으면 좋겠는데.”

이런 때일수록 “부처님 말씀대로 소욕지족(小欲知足)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욕심내지 말고 작은 일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 어려움을 이겨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께서는 고난이 닥쳤을 때 내면의 세계를 먼저 보라고 말씀하셨다. 모든 사물은 상의상존(相依相存)의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서로 나누고 베풀면 봄은 절로 찾아온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부자들이 “독특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대체로 돈을 보는 철학이 없어 보여. 돈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는데 말이야. 단지 세상을 매개하는 수단에 불과하잖아. 그래서 돈은 모은 다음 버려야 해.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넌 후 뗏목을 버리듯 말이야. 뗏목을 지고 가는 어리석음을 범하면 돈의 노예가 되는 법이야.”

“돈은 내 것인 동시에 전체의 것”이라면서 꾸중은 계속 이어졌다. “자신의 몸과 마음도 스스로 부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거든. 하물며 돈을 좌지우지 하려 한다면 참으로 우매한 짓이지. 부자들은 자신들이 잘나서 그 돈을 번 줄 알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번 것이야. 부자들은 그 점을 깨달아야 해.”

기왕의 지역, 이념의 갈등에 계층 간 갈등까지 국민의 마음이 이리저리 찢겨진 느낌이다. WBC 야구 같은 국가 대항 스포츠 경기가 벌어지면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왜 우리는 이처럼 분열을 거듭할까?
“불교 연기론에서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를 가르친다. 부자와 가난한 자, 힘 있는 자와 약자도 결국은 동체이며 한마음이다. 이런 대자대비의 생각에 이르지 못한 결과 우리 국민이 쌓고 있는 공업(共業)이다.”

금강산과 개성공단 길이 수시로 막히는 등 남북 갈등도 좀체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도 우리 민족의 업인가?
“그렇다. 양쪽에 다 문제가 있다. 한 쪽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재국가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다. 또 한 쪽은 민주주의를 하긴 한다. 그런데 어글리(ugly) 민주주의다. 서로 업을 쌓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조속히 해결되기 힘들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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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남북 간 화해정책은 계속해야 하지 않겠는가?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어렵사리 텄다. 그 대화는 지속돼야 한다. 또 정부 접촉과 별도로 민간인 교류를 확대해 남북 간 화해가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되었으면 한다. 남북 문제는 정말 장기 비전, 인내가 필요하다.”

지난 두 정권의 대북정책을 두고 ‘북한 퍼주기’로 비판한 보수단체들을 향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남북이 현실적 등가 거래를 하는 상호주의를 엄격히 적용하는 차원에서라면 북한과 아예 대화할 생각을 말아야지!”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된 느낌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정권이 교체돼 일시적 변화는 있을 수 있다. 과거 정부가 잘했든 못했든 하루아침에 남북관계를 그렇게 간단하게 끊으면 안 된다. 그러면 다시 시작해야 되기 때문이다. 시간, 노력, 심지어 비용까지 새로 지불해야 한다. 물론 대북정책의 강약을 조절할 수는 있는 일이다. 이런 상태가 오래가선 안 된다.”

우리 사회의 분열상에 이제 종교 갈등까지 한몫한다. 지난해 불교계는 종교 편향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기도 했는데.
“세계적으로 종교 갈등은 있다. 나만 옳고 남을 인정치 않으려는 아집과 이기주의가 원인이다. 분별심을 없애고 이것이 옳으면 저것도 옳다는 지혜로운 생각을 가져야 한다. 불교, 기독교 간 갈등은 현 정부에 들어와 좀 심해졌다. 우리나라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유달리 배타적이다. 그것은 일부 성직자의 자질 문제다. 그리고 몰지각한 사회 지도층이 이를 부추기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종교 편향 문제가 제기됐을 때 어떤 생각이었나?
“부처님의 가르침 자체는 틀린 게 없다. 이를 제대로 행하지 못한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불교 조직이나 승려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는 뼈아픈 참회의 기회이기도 했다. 인간 세계의 본래 모습이 그렇듯 종교도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종교 갈등은 상호 견제, 좋은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무엇보다 우리 교육이 잘못됐다. 우리가 국민의 인성을 키우는 데 등한시 해 왔다. 잘못된 것은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는 국민성은 여기서 비롯됐다. 그 책임은 모든 기성세대에게 있다. 나를 포함해서다. 국민이 자기 내면의 세계를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누군 줄도 알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권력형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불감증은 고질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인성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국가관이나 준법정신이 박약하거나 상실한 사람들로 보인다. 또 법이 문란하다. 법 집행이 제대로 안 된다는 뜻이다. 권력을 쥐었으니 부도 거머쥐자 한다거나, 부를 축적했으니 권력도 잡자고 한다면 신이 노한다.”

사회를 정화하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땜질 처방으로는 안 된다. 어릴 때부터 인성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하면서 지도자들이 스스로 ‘할절신체(割截身體)’하는 큰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할절신체란 자신의 사지를 찢어내는 고통을 주어도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무서운 수행정신을 가리킨다. 요즘 우리 사회는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사고가 지배적이다. 이런 현실에서 인성, 준법 교육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그거 아니면 방법이 없다. 아이들 교육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 표명이라는 게 기껏 학원 보내는 일밖에 더 있는가? 인성교육을 해야 할 가정이 사라져 간다는 게 더 근본적인 문제다.”

가정이 사라져 간다니?
“요즘 집은 사실상 하숙집에 가깝다. 정상적인 가정의 모습이 아니다. 과거 대가족이 모여 살던 때는 집이 자연스런 인성교육의 장이었다. 요즘 가족들은 각자 집 밖으로 돌다가 밥 먹고, 잠잘 때만 모인다.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국민 통합은 국가적 숙제가 된 지 오래지만 마땅한 성과는 없었다. 이런 때 종교가 그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성직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직자들의 자질이 부족해 보인다. 일반 국민이 성직자들을 선지자, 선도자로서 믿지 않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불교계만이라도 먼저 나서면 어떤가?
“불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 그래서 불교는 국민통합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 종단 차원에서도 이 부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나아가 모든 성직자가 허위의 껍데기를 먼저 벗어야 한다. 그러면 너나 나나 동체가 된다. 어느 종교 할 것 없이 그런 깨달음이 필요하다.”

조계종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다. 그런데도 제 식구마저 통솔을 못해 갈등이 불거지고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부처님 법이라는 게 삼라만상처럼 다양하다. 그래서 불교의 사상이나 방편이 다양성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뜻을 하나로 모으기가 힘들다. 총무원장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는 바람직한 총무원장상으로 “종단의 현실을 직시하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직관력”을 들었다. “이런 리더십이 있는 총무원장이라면 종단 갈등이 많이 줄어든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총무원장은 청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가 덧붙였다.‘청정’이란 말이 유독 귀에 오래 머물렀다.

“속세 사람도 죄를 지으면 그 값을 받지 않는가? 성직자는 행여라도 사회의 지탄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게지. 그래서 성직자 집단은 어디보다 상벌이 분명해야 해. 그런데 일부에서는 이를 오해하거든. 부도덕한 일이 있어도 자비란 이름으로 그냥 덮고 넘어가는 풍토가 없지 않았지.”

올해 10월 조계종 제33대 총무원장 선거가 있다. 조계종 안팎에선 종하스님이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거론된다. 출마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총무원장은 종단의 역사를 책임지는 무거운 자리야. 간혹 찾아와 건의하는 스님들이 있어. 하지만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건 아니거든. 전체가 아닌 일부라도 승가 사회의 동의가 필요해.” 그는 즉답을 피했다. 다만 “역사를 책임지는 것은 두려운 일”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윤 석 진 뉴스위크 한국판 편집위원 / gray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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