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신세대 여류작가 노통브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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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통브는 "대중과의 관계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며 독자들의 편지에 일일히 친필 답장을 쓴다고 한다. 아래는 노통브가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보낸 프랑스어 메시지.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애정을 전합니다’라는 뜻이다. [사진제공=알벵미셸 출판사]

오랫만에 등장한 천재인가, 대중을 선동하는 ‘문학소녀’인가.

1992년부터 해마다 소설을 출간해온 프랑스의 신세대 여류작가 아멜리 노통브(37)에 대한 평가는 “촌철살인의 작가”에서부터 “별 볼일 없다”까지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분명한 것은 독자가 엄청 많다는 사실. 작품 대부분이 50만부 이상 팔려 프랑스에서만 500만부가 넘는 판매기록을 세웠고, 35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노통브를 지난달 25일 파리 14구 위겐스 거리에 있는 알벵미셸 출판사에서 만났다. 그녀는 “한국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반가와했다.

-자신의 상상력은 어디에서 솟아난다고 생각하나.

"그게 미스터리다. 나도 잘 모른다.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자마자 머릿속에서 갖가지 생각이 막 솟아 오른다. 그것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책상으로 뛰어가 기록한다. 그게 다다."

-처음 발표한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문학세계사가 지난달 번역 출간)을 120시간 만에 퇴고도 하지 않고 써냈다고 들었다. 비결이라도 있나.

"아침에 일어나 아주 진한 차를 마신다. 차는 나에게 강력한 정신적 에너지원이다. 중국 차도 마시지만 진한 케냐 차를 특히 즐긴다. 아침마다 500cc 정도 마시면 카페인 때문에 몸이 덜덜 떨린다. 그 떨림으로 인해 문자들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온다. 나는 그것을 쉴새없이 종이 위에 주워담는다."

케냐 차 이름을 묻자 "식료품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엑스트라 스트롱 티'(Extra strong tea)"라고 말해주었다.

-당신 문학의 주제는 무엇인가.

"인간존재, 즉 사람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사람 사이의 관계에 천착하는 것이 나의 작업이다."

노통브에게 닮고 싶거나 존경하는 작가가 있는지 물었다. "없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많지만 닮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나는 나이고 싶다"는 것이다.

-올 가을 13번째 작품을 출판한다는데.

"매년 그래왔듯 올해도 9월 1일 새 소설을 낸다. '비오그라피 드 라 팽'(Biographie de la faim.굶주림의 전기)으로 항상 배고파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여자주인공은 내가 모델이다. 나는 항상 배가 고프다. 머리도 고프고, 가슴도 고프다."

-앞으로도 1년에 한권씩 책을 낼 작정인가.

"가을에 출간할 소설은 이미 끝냈고, 다른 소설을 쓰고 있다. 이 작품은 출간 안된 작품 중 52번째 소설이다."

-52편을 다 출간하려 하는가? 그것만으로도 52년이 걸리는데.

"모든 원고를 다 출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미친 짓이다."

-출판하는 원고와 안하는 원고의 선별 기준은.

"내 본능이다. 원고를 다 쓰고 냄새를 맡아보고 느낌이 오면 출판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한다."

그녀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마치 질문을 미리 알고 기다렸다는 듯 답을 토해냈다.

-스스로 생각하는 성공의 비결은.

"잘 모르겠다(웃음). 아마 모든 사람이 내 소설 속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 상사가 소리를 지르고, 그래서 힘들어 하고, 실패하고…독자들이 거기에 공감해서가 아닐까."

-한국 문학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미안하지만 없다. 하지만 요즘 프랑스에 소개된 영화는 몇편 보았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홍상수 감독)가 아주 좋았고,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도 재미있게 보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 감독)도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한국에서는 '문학의 위기'가 거론된다. 소설이 부진한 반면 영화는 연속 대박이다. 프랑스는 어떤가.

"프랑스에서도 영화는 잘 나간다. 그러나 문학은 영화보다 더 잘 나간다"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지속시키는 방법은.

"딱 하나, 좋은 책을 쓰는 것이다. 그 안에 뭔가가 있는 책, 한번 읽으면 도저히 놓을 수 없는 책, 그런 책을 쓰면 된다."

-한국에서 당신의 작품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고맙게 생각한다. 나도 한국을 알고 싶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소개해 달라. 영어로 편지를 써주면 고맙겠다."

-한국에선 당신의 이름이 '노통브' 아닌 '노통'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인들도 똑같은 실수를 한다. 이 인터뷰를 계기로 바로잡아줬으면 좋겠다."

그녀는 성장과정에서 유럽에서 보낸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 아버지가 외교관이어서 항상 돌아다녔다. 일본에서 태어났고, 중국.방글라데시.미얀마.라오스.미국 등을 거쳤다.

-소설가 수업은 어떻게 했나. 습작은 많이 했는지.

"훌륭한 소설가가 되려면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 쓰고 쓰고 쓰고 쓰고 쓰고 또 쓰고 자꾸 쓰고…수년간 많은 책을 쓰는 것뿐이다. 아울러 많이 쓰기 위해선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다."

노통브는 현재 브뤼셀과 파리를 왔다갔다 하며 작품을 쓴다고 했다. "브뤼셀에서 파리까지 기차로 1시간20분밖에 안 걸린다"며 "두 나라에 있는 시간이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알벵미셸 출판사의 사무실은 기자들을 만나거나 독자 편지에 답장을 쓰는 곳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가족관계를 묻자 "부모님은 벨기에에 산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현재 벨기에 기업의 한국지사장으로 일하는 오빠와 프랑스 남부도시 리용에 사는 언니에 이어 자신이 막내라고 했다. 결혼은 안했지만 "같이 사는 애인은 있다"고 살짝 고백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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