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사 흔드는 정치권 … 검찰이 중심 잡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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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박연차 사건이 복잡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과 절친한 천신일씨와 박연차 구명활동을 논의했다는 의혹이 있으며, 천씨가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특별당비 30억원을 대납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며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고 검찰에 고발했다. 청와대는 ‘30억원’은 천씨의 예금을 담보로 이명박 후보가 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가 지난해 다른 은행의 대출금으로 갚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가 입증될 경우 그의 신병 처리를 놓고도 정치권에서 갑론을박(甲論乙駁)하고 있다. 구속하라느니, 그래선 안 된다느니 정치권 멋대로다.

검찰 수사를 둘러싼 여야 정치권 공방은 그 속셈이 뻔하다. 여야 서로 수사 결과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상대를 흠집 내려거나 물타기하려는 것이다. 코앞의 재선거에 미칠 파장도 계산에 넣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소환을 29일의 재선거 후로 미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연유다. 이 때문에 검찰 수사가 정치권 공방에 휘둘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권력형 비리 사건은 실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여러 곡절을 겪게 마련이다. 김영삼 정권 시절 정태수 한보 회장 로비 사건의 경우 사건 종결 전까지는 검찰이 몸통은 놔두고 깃털만 건드린다는 항변이 있었다. 김대중 정권 시절 대통령 아들의 스캔들을 포함해 각종 대형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정권 핵심부의 어느 선까지 연결되느냐를 놓고 논란이 분분했다. 진실의 차원에서 볼 때 이들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완벽한 것이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의혹의 몸통은 그런대로 파헤쳐졌으며 권력자들은 사법 처리됐다. 초대형 사건은 이처럼 일단 터지면 어느 정도 진실을 향해 굴러가는 구동력(驅動力)이 있다. 검찰이 할 일은 이런 구동력을 잘 유지하면서 정도(正道)에 따라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야당이 제기하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의혹도 검찰이 철저히 파헤쳐 사실 그대로의 결과를 국민 앞에 제시하리라 믿는다. 그것이 현 정권과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유지하는 길이다. 전직 국가원수의 소환 일정이나 신병처리 문제에 검찰이 최대한 신중을 기하는 것은 이해할 구석이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정치권이나 여론의 분위기를 고려하는 모습을 보이면 수사 전체에 대한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검찰은 중심을 잡고 진실 규명을 위해 뚜벅뚜벅 갈 길을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