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도]78.교육연극…열린 연기통해 '사회인 만들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도대체 교육연극이 무엇입니까' .최근에 독자 한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가끔씩 몇몇 극단 앞에 타이틀로 들어가는 이 용어가 도무지 생소했기 때문이다.

듣고 보니 그랬다.

무의식중에 이 용어를 쓰곤 있지만 그 의미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이 '오용'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교육' 이란 글자가 들어 있으니 자유로운 상상을 해본다.

'교육을 통한 연극' .그렇지 않으면 '연극을 통한 교육' 이란 말인가.

굳이 결론삼아 말하자면 '교육연극' 은 후자쪽에 가깝다.

연극을 통한 교육, 즉 창의적 연극놀이 (Creative Dramatics) 를 통해 아동.청소년들의 인성 (人性) 발달을 돕는 일체의 연극활동을 교육연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용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설다.

연극이 공연물로서만 기능할 뿐 그 교육적 차원에 대한 접근이 미약했기 때문이다.

아동극.청소년 연극이 있지만 교육연극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어떤 점에서 그럴까. 아동극과 청소년 연극은 관객대상이 아동과 청소년으로 나뉘어질 뿐 기성연극과 똑같은 제작 시스템을 갖고 있다.

어른들이 출연하기 일쑤이고 그 내용 또한 '주입식' 이다.

관객 (어린이나 청소년) 과의 소통은 무대와 객석만큼 거리가 멀다.

그야말로 기성연극이 어른들을 위한 예술이듯, 청소년 연극이나 아동극은 단순히 '그들' 을 위한 예술일 뿐이다.

이와 달리 '교육연극 (Educational Theater)' 은 예술보다는 학문적인 개념이다.

완성도 있는 공연물로서의 기능보다는 그 '과정' 에 무게중심이 있다.

요즘 중앙일보가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신문을 통한 교육 (Newspaper In Education)' 과 일맥상통한다고 할까. 우리나라에 교육연극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5년전 서울교육극단이 창단되면서 이 서구식 개념이 처음 도입됐고, 몇차례의 교육연극 공연과 워크숍을 통해 비로소 세간의 관심권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역사가 짧은 만큼 교육연극에 대한 연극계, 혹은 교육계의 이해도는 낮은 편이다.

조만간 연극이 음악이나 미술처럼 중.고등학교의 정규 과목으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교육연극에 대한 그 이론적 배경 등을 약술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서울교육극단의 대표이자 뉴욕대 대학원에서 교육연극을 전공한 박은희씨의 말. "연극은 원래 인간성의 발견과 옹호, 그리고 그 창조적 충돌에서 비롯됐다.

또한 연극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사회를 다룬다.

이런 상식을 상기시킨다면 교육연극의 개념은 쉽게 풀린다.

바로 교육연극은 사람이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가지 사회적 기술 (Social Skills) 의 습득을 도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 때문에 교육연극의 주 타깃은 성인이 아닌 아동과 청소년들이다.

그래서 아직 성장기에 있는 학생들에게 교육연극은 '학교연극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방법론을 제시해 준다.

이쯤에서 관람용 청소년 연극이나 아동극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그럼 교육연극의 방법론은 어떤 것이 있는가.

학자 (미 뉴욕대 마크 라이허드 교수를 중심으로) 들은 예닐곱가지로 교육연극을 분류한다.

이 가운데 청소년 관련 교육연극으로 DIE (Drama In Education) , TIE (Theater In Education) , 유스시어터 (Youth Theater)가 주로 거론된다.

먼저 DIE는 교사와 학생이 함께 체조나 간단한 마임 등으로 몸을 풀면서 표현과 몸짓을 익히는 일종의 연극놀이다.

간단한 워밍업으로 시작해 장면만들기.즉흥연기.가상적인 역할놀이.이야기 꾸미기 등을 통해 사회생활에 필요한 여러가지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다.

말하기와 쓰기.듣기.사고와 판단.자의식의 형성과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을 기르는 과정이다.

이와 달리 TIE는 참가자들이 일정한 주제를 정해 핵심 개념을 파악한 뒤 공연작을 만들고, 최종단계로 토론을 벌이는 일련의 과정까지를 포괄한다.

지난 92년 10월 서울교육극단이 창단작품으로 선보인 '샌드위치 변주곡' 은 국내 첫 TIE 프로그램이었다.

18세 전후 서울지역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이 공연에서는 교육현장의 부조리와 향락성 청소년 놀이문화를 소재로 삼아 청소년 관객 스스로 토론을 통해 해결책을 찾도록 유도했다.

여기서 한발짝 나아간 것이 유스시어터다.

전문인들이 연기자로 나서는 TIE와 달리 학생들끼리 자유로이 주제를 선택, 토의하면서 극의 내용과 형식을 결정해 연습해 보는 과정이다.

흔히 '청소년 연극' 으로 바꿔봄직 하지만 전문극단이 청소년 관객을 위해서 공연하거나, 기성작가의 작품을 선정해서 배역을 정하고 전문연극인이나 교사의 연출에 의해 학생들이 연습하고 공연하는 우리식 '청소년 연극' 과는 다른 개념이다.

앞으로 학교 교육과정에서 이뤄져야할 청소년 연극의 방법론은 이런 교육연극에 입각해야 한다는 게 이 분야 전공자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그래야만 연극이 인간의 사회화에 적절히 기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연극뿐만 아니라 외국어 교육 등에도 이런 교육연극의 방법론을 택할 경우 교육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씨는 " '열린 교육' 의 궁극적 목적이 이런 것이 아니냐" 고 반문했다.

그러나 이런 '선진 방법론' 에도 불구하고 아직 교육연극은 관람용 아동극과 청소년극에 밀려 별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 이는 근본적으로 주변의 이해부족 탓이지만 이론보다 현장체험과정이 앞서야 하는 교육연극의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다.

아동.청소년의 '참여' 를 생명으로 하는 교육연극과정은 그만큼 참가자들의 노력과 인내심이 더욱 절실하다.

또한 교육행정의 지체도 교육연극의 몰이해를 재촉하고 있다.

2천년대에 들어서면 우선 각 예술고에서부터 연극이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될 전망인데, 이때를 대비해서라도 교육연극 연구기관의 설립과 지도자 양성, 교습법의 개발등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정재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