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동남아 부동산시장 '개점휴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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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금융위기의 여파로 동남아 각국의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체나 투자자.실수요자 할 것 없이 금융기관 대출이 꽉 막히면서 이 지역의 부동산 시장 전체가 '개점휴업'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거품이 빠져버린 일본의 부동산 시장을 연상시키는 이같은 현상으로 한때 최대 투자분야로 각광받던 동남아 부동산시장은 이제 경기후퇴를 초래할 주범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태국의 경우 부동산은 이미 투자가치가 전혀 없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태국은 부동산과 관련된 금융기관의 대출이 손쉬워 개발업체나 주택구입자 모두 은행에서 돈을 빌려 부동산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왔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태국에 진출한 미국계 은행의 한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너무 커 부동산분야에 돈을 대출해주기 쉽지 않다" 며 "어떤 부동산담보를 제공해도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실정" 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금융위기에 따른 금리상승으로 돈을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은행들은 지난 7월까지 연 18.5%에 머물던 금리가 연 28%까지 치솟자 신축 부동산의 가격이 오르고 분양.판매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해 이 분야에 대한 돈줄을 바싹 죄고 있다.

부동산담보 대출로 유명한 PT발리은행의 조이스 자잔토는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높은 금리의 은행 돈을 빌려 과연 수지를 맞출지 의심스럽다" 며 “현재로선 대출을 주는 쪽이나 돈을 빌리는 쪽이 모두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양상” 이라고 말했다.

이 나라 최대의 부동산 개발업체 PT시푸트라개발은 지난 8월까지 월 평균 4백동의 부동산을 분양했으나 9월부터는 평균 17동으로 규모가 급감했다.

이 회사는 부동산 구매자에게 싼 이자로 대출을 제공해 판매를 촉진시키는 한편, 앞으로 추진하려고 했던 모든 개발계획을 보류했다.

홍콩의 부동산 개발업체 스와이어부동산도 모든 신규 개발을 내년 2월 이후로 미뤄둔 상태다.

은행 대출금리가 정상화되고 금융기관들이 담보대출을 재개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홍콩 은행들은 부동산가격이 앞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해 부동산담보 평가액을 실제 거래액보다 약 20%정도 더 낮게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까지 은행들이 안심하고 대출할 수 있는 수준까지 부동산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필리핀의 경우도 이미 모든 담보대출을 중단하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은 이달 중순 금융기관들에게 부동산관련 대출을 제한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이같은 부동산시장의 냉각은 당분간 동남아지역 경제에 크나큰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30~50%까지 하락함으로써 외국투자자의 개입이 없다면 시장이 다시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울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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