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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상대잔칫날 재 뿌리냐” 외교부 ‘PSI 발표’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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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외교통상부가 다시금 위기를 맞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혼선 와중에 보여 준 행보에 대해 청와대에서 집중적인 성토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한 핵심 참모는 21일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을 장악하고 있는 외교부는 PSI 논의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전략적인 융통성을 보여 주지 못했다”며 “PSI 발표라는 목표에만 집착하는 모습에 이 대통령이 논의 과정에서 몇 차례 실망감을 표시했다”고 전했다. 이 참모는 “남북 관계 현안을 다루는 데 있어 지금까지는 외교부적인 강경 논리와 사고가 일방적으로 지배했지만, 앞으로는 이런 경향이 많이 바뀔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등 관련 장관들과 주요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유명환 외교부·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이 대통령, 현인택 통일부 장관. [오종택 기자]

그간 정부 내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몇 가지 장면이 연출됐었다. 먼저 1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 유명환 외교부 장관 등 정부 인사들은 15일 PSI 발표를 기정사실화했지만 이 대통령에 의해 방침이 뒤집어진 바로 그 회의다. 이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에 (PSI를) 발표하겠다는 것은 잔칫날에 재를 뿌리는 것이며, 이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면서 “개성에 우리 국민이 억류돼 있는데, 최소한의 손이라도 좀 써 본 뒤 발표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지시했다. D데이는 15일에서 19일로 미뤄졌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이런 부분을 언급하기 전까지는 ▶태양절인 4월 15일에 발표하는 게 적절한지 ▶개성 억류 문제를 풀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하는 등의 두 가지 문제가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바깥에 알려진 대로 외교부·통일부 간 갈등의 와중에 대통령이 통일부의 손을 들어준 게 아니었다”며 “ 자기 울타리에 갇혀 있는 외교부의 관료주의적 경직성에 대통령이 답답함을 표출하며 전술적 지침을 준 게 본질”이라고 전했다. 16일 오후 북한이 ‘21일 개성 접촉’을 제안한 뒤 벌어진 양상도 비슷했다. 북한의 접촉 제의 사실을 쉬쉬했던 외교부는 17일 밤에도 ‘19일 발표’ 강행 의사를 밝혔다. 한 발 더 나가 북한의 접촉 제의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18일 오전에도 외교부는 이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강경 대응을 부를 게 뻔한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판단을 내놓는지 모두가 놀랐다”고 전했다. 현재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에선 외교부 독주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의장이며, 청와대의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역시 외교부 차관 출신이다. 이 대통령의 측근인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최근 기용됐지만 아직은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남북 관계의 민감성을 고려치 않는 외교부 주도의 강경 노선이 PSI 혼선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 청와대에서 나오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해 4∼6월 쇠고기 협상과 그로 인한 촛불시위 때도 정무적 판단 없이 ‘한·미 정상회담 직전 쇠고기 협상 타결’이란 시나리오를 밀어붙여 역풍을 맞게 했다는 책임론이 제기됐었다. 당시 촛불시위 등의 여파로 곽승준(현 미래기획위원장) 전 국정기획수석, 박영준(현 총리실 국무차장) 전 기획조정비서관이 청와대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외교안보 라인을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고 이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도 했었다. 서승욱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 '황금열쇠 6돈,넷북,아이팟터치,상품권이 와르르…' 2009 조인스 개편 이벤트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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