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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학계는 정부 정책에 뒷짐지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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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경제학자와 법률가들을 관료로 등용한 반면 정치학자들은 별로 발탁하지 않았다. 헨리 키신저 전 하버드대 교수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교수 같은 우수한 학자들은 과거 외교정책에 중요한 자문 역할을 맡아왔다. 하지만 요즘은 국제관계를 전공하는 수준 높은 교수들 중 입각한 이가 별로 없다. 정부에 몸담았다가 다시 학계로 돌아오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상아탑과 정부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정부가 아니라 학계에 있다.

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가 현실 정책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정책에 신경 쓰다 보면 학자로서의 진로에 지장이 생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통 이해할 수 없는 전문용어로 가득한 수학적 모델과 새로운 방법론을 발전시키는 편이 학자로서는 승승장구하기 쉽다. 1906년부터 발행된 미국 정치과학 학회지(APSR)를 보면 창간호부터 50년간은 논문 다섯 편 중 한 편꼴로 정책에 대한 조언과 비판을 담았다. 하지만 67년 이후엔 이런 종류의 논문을 찾아볼 수 없다. 리 시 젤먼 편집장은 이에 대해 “학회지를 훑어봐도 권력에 진실을 말하고 정책의 장단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역할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학자들은 정책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의무가 있다. 게다가 이런 일을 함으로써 학문적 소양과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능력도 발전시킬 수 있다. 데이비드 뉴솜 전 미 국무차관은 10년 전 “이론과 모델의 뒤로 숨는 학자들이 늘어나는 최근의 추세가 새로운 세대를 길러내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학자들은 종종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아니라 학자끼리 관심을 가질 법한 이론과 방법론을 가르친다. 어떤 학자들은 이론과 정책 간의 차이로 정책에 손실이 생길진 몰라도 좋은 사회과학 이론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방대하고 전문화된 학문세계에선 이 차이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소수의 학자들만이 세부적 전공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모든 사회과학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이는 더욱 소수다.

그럼에도 신문이나 잡지,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선거 입후보자와 관료들에게 조언을 해주면서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학자들의 경우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에서만 1200개 이상의 싱크탱크가 정책 아이디어와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거느리고 있다. 문제는 싱크탱크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은 설립자와 지원자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은 이에 반해 훨씬 중립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싱크탱크의 다양성이 민주주의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학계가 주춤한 사이 중립적인 정책이 마련될 기회는 줄어드는 것이다.

학계 스스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대학의 각 학과는 정책 연관성이 높은 연구를 하는 젊은 학자들을 키우고 발탁해야 한다. 학회지도 이런 학자들에게 더 높은 비중을 둬야 한다. 비인기 정책 분야도 인내심을 갖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학계의 풍조는 이와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국제정치학
정리=김민상 기자

[워싱턴 포스트=본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