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기구 수정안 문제점…인사·예산 재경원이 장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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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9일 국회에서 처리될 금융개혁관련법안중 감독체계 개편내용이 IMF와의 합의와 배치돼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감독기구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은 지난 26일 재경위 법률심사소위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통합감독기구의 성격.소속.업무관할 등이 크게 수정됐다.

한마디로 재경원이 다시 칼자루를 쥐는 내용으로 바뀐 것이다.

◇ 형식뿐인 통합감독 = IMF는 강력한 통합감독기구의 설치를 요구했다.

따라서 은행.증권.보험으로 흩어져 있는 감독기구를 통합해 금융감독위원회를 만드는 것은 일단 이에 맞는 방향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그렇지 않다.

외형적 통합일뿐 '기능의 통합' 이 이뤄지지 않았다.

예컨대 수정안에 따르면 종금사 등 제2금융권에 대한 감독은 재경원 직속의 신용관리기금이, 산업은행 등 특수은행의 감독은 재경원이 맡게 돼 있다.

결국 금융감독권이 금감위와 재경원으로 이원화된다는 얘기여서 IMF와의 합의는 실제로 크게 변질됐다.

◇ 재경원 산하기구화 = IMF는 통합금융감독기구를 세워 예산.운영상 정부로부터 독립될 것을 요구했고 정부도 이에 합의했었다.

그러나 재경위 수정안은 ▶금감위를 국무총리가 아닌 재경원 산하로 두고 ▶위원장 임명절차를 국무총리의 제청이 아닌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금감위 부위원장 임명의 경우 재경원장관이 직접 제청하고 ▶공무원이 금감위 사무국을 맡아 예산.회계.의사관리를 맡도록 했다.

이에 따라 통합감독기구는 완전히 재경원의 산하기구가 되는 셈이다.

이는 '감독기구의 독립성' 을 강조한 IMF와의 합의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 그대로 통과되면 = 당장 재경원의 권한이 크게 강화된다.

통합감독기구에 대한 인사권 및 예산편성권을 쥐게 되기 때문이다.

또 사무국에는 대부분 재경원 출신 공무원들이 자리잡게 되므로 사실상 재경원의 내부조직이나 다름없다.

기능의 효율에도 문제가 있다.

재경원은 그동안에도 종금사와 은행신탁계정에 대한 감독권을 갖고 있었지만 제대로 감독하지 못해 금융위기의 불씨를 키웠고 부실종금대책에서도 혼선을 빚으며 혼란만 가중시켰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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