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금 동향…"희망이 보인다" 서서히 한국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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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에 대한 1백억달러 조기지원이 발표된 뒤 도쿄.뉴욕.런던 등 선진국 금융시장에는 한국의 단기 외환위기가 해소될 가능성을 감지케 하는 분위기가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먼저 도쿄에서는 26일 지금까지의 위기감이 안도감으로 바뀌는 분위기가 확연해지고 있다.

일본 대장성과 일본은행이 한국계 은행에 대한 대출을 유지하라고 강력히 권고한 뒤 일본의 민간은행들 사이엔 한국의 금융위기를 방치해선 안된다는 한국 지원론이 강하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에 대한 단기 대출금을 많이 갖고 있는 10대 은행들은 이날 저녁 한국의 금융위기 해소에 최소한 '선별적으로' 동참하겠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오전 한국계 한 은행으로부터 만기도래한 20억엔의 대출금을 회수했던 농림중앙금고는 "다른 한국계 금융기관 대부분에 대해선 만기연장에 응하겠다" 고 밝힌 것이 대표적인 태도변화다.

도쿄 미쓰비시 등 다른 은행들도 "모든 한국계 금융기관에 만기 연장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금융기관을 제외하고는 만기연장에 나설 의사가 있다" 고 분명히 밝혔다.

일본 금융기관들은 올해말과 내년 1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금 가운데 주택은행.장기신용은행.중소기업은행 등 우량 금융기관에 대해선 대부분 만기연장에 응해줄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한국에 대출해 주고 있는 일본의 모든 금융기관들이 만기연장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10대 은행을 제외한 채권 금융기관들은, 특히 경영이 부실한 한국계 금융기관엔 여전히 엄격하게 자금을 회수할 방침이다.

사쿠라.후지 등 상대적으로 경영이 어려운 금융기관들은 이미 지난 두달동안 한국에 대한 대출금 회수에 나서 대출잔액이 1천만달러 안팎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농림중앙금고와 도쿄 미쓰비시.다이이치 간교 은행의 움직임이 한국으로선 매우 중요한 실정에서 10대 은행의 공동성명은 한국의 금융위기 해소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출기간 연장으로 상대적으로 한숨을 돌린 한국계 금융기관들은 악성부채 상환에 착수하고 있다.

이들은 도쿄 금융시장이 경색된 지난 9월부터 외화 조달난에 봉착, 한국의 본점으로부터 지점당 적게는 1억달러, 많게는 3억달러 정도의 달러화를 지원받았다.

이 자금의 금리가 높기 때문에 만기연장이 되는 자금을 이용해 본점 지원금부터 갚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뉴욕 금융시장에서도 1백억달러 조기지원 소식이 전해진 이후 각 금융기관이나 펀드매니저들 사이에 한국에 대한 긍정적 기류가 흐르고 있다.

현재 크리스마스 휴가철인데다 26일은 영국.캐나다 등이 휴일을 맞아 시장이 열리지 않는 상황이지만 산업은행 채권수익률의 하락세와 한국물 가격의 오름세는 이어졌다.

한국계 J은행 뉴욕지점의 경우 대출금이 회수될 것으로 우려됐던 도쿄 미쓰비시 은행의 하루짜리 2천만달러 대출금이 만기연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한국물 매입이나 상환연장은 아직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다.

현지에서는 한국의 외환위기 상황이 아직 외채상환 일정을 조정하는 단계에 있다고 본다.

결국 현재로서는 여전히 '모라토리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국제금융시장의 반응이 당장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지적이다.

월가의 한 금융 관계자는 "한국 정부는 시장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 월가의 민간 금융기관들을 향해 꾸준히 '좋은 뉴스' 를 내보내고 이들이 휴가에서 돌아오는 내년초를 전환점으로 삼는 것이 좋을 것" 이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 한국계 금융기관 관계자들은 다음주초 예정된 뉴욕지역의 6개 상업은행 대표들의 재회동에서 어떤 조치가 결정될 것인지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의 금융위기 해소는 IMF나 미.일 정부와 같은 공공부문의 지원만으론 한계가 있으며 결국 세계적 민간 금융기관들이 한국에 대해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하는 방향으로 돌아서야 하기 때문이다.

뉴욕.도쿄 = 김동균.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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