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모,10대취향 댄스 탈피 1년반만에 새 앨범…'성인가수' 첫 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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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김건모가 1년 반만에 5집을 냈다.

오랜만에 나온 그의 음반에 보내는 가요계의 눈길은 유달리 절실하다.

전례없는 대가뭄에 그의 음반이 급시우 (急時雨)가 되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기대는 그가 우리시대의 탁월한 팝가수임에 기인한다.

끊고 맺음이 매끄러운 창법속에 풍부한 감성을 우러내는 그는 소울에 기반한 위에 랩 (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 , 레게 ( '핑계' ) , 하우스와 디스코의 혼합 ( '잘못된 만남' ) 등 다양한 장르를 맛깔나게 요리해 냈다.

프로듀서 김창환은 이런 그를 '흑인음악을 전하는 전사 (戰士)' 로 표현한다.

하지만 지난해 나온 4집 '스피드' 는 쏠쏠한 판매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정체 (停滯) 를 보여 김건모도 서른에 접어든 나이와 매너리즘과의 싸움에 직면했음을 드러냈다.

그런 비판을 의식하고 고민한 탓인지 5집은 출시설이 나돈지 넉달이 지나서 발매 (22일) 될만큼 산고를 거듭했다.

이 음반에서 김건모는 성인취향의 소울풍 발라드로 카드를 던졌다.

나이가 나이이고 앨범 네장을 낸 이력을 볼때 10대를 의식한 댄스곡에서 이젠 성인수준의 고급음악으로 도약해야한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그러나 총 14곡의 카드에는 대중적인 댄스넘버도 몇곡 섞여있어 흥행을 위한 최소한의 출구는 마련해 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댄스넘버는 트로트풍의 팝댄스 전문 작곡가 윤일상이 처음 참여해 눈길을 모으는데 그중 로큰롤과 하우스비트를 섞은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가 경쾌하고 대중적이다.

김건모 본인은 6곡을 지어 역대앨범중 가장 많은 자작곡을 기록했다.

그가 작곡.프로듀싱.편곡을 도맡은 발라드 넘버들은 하나같이 잘 정제된 감상용 음악이어서 성인가수로 자기위상을 재설정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앨범제목 '마이셀프 (나 자신)' 는 그런 다짐을 공개선언한 듯하다.

곡의 내용역시 청춘과 결별한 30대 독신남의 정서가 곳곳에서 우러난다.

직접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부른 '가지않는 길' 은 "나 이제는 떠나려해/항상 쉬운 길만을 또 갈 순 없잖아" 라는 프로스트적인 시구를 노래하고 있고 결혼한 친구를 떠나 보낸 가슴앓이를 스윙풍으로 그린 '이빠진 동그라미' 도 그의 처지와 연결된다.

샹송 분위기의 중간템포곡 '이별없는 사랑' , 라틴풍의 리듬이 느껴지는 슬픈 곡 '사랑이 떠나가네' 등도 성인풍이다.

선배와의 퓨전곡도 있어 성장을 다짐하는 의사로 비친다.

80년대 벗님들의 히트곡을 랩으로 리메이크한 '당신만' 과 언더그라운드 포크여가수 권진원과 듀오로 만들어 부른 '오늘처럼 이렇게' 가 그것. 5집은 상업시스템의 정점에 선 팝스타가 음반업계의 상업적 요구와 자신의 음악적 욕구를 조화시키려 애쓴 음반이다.

그는 댄스스타로서 기득권을 버리고 성인가수로 첫발을 내딛었지만 과거의 열정적 창법을 기대하는 팬들을 의식해 확실하게 자기 방향만 주장하지는 않았다.

이때문에 음반의 색깔이 뚜렷하지 않고 안전주의라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신보는 김건모가 본인의 뿌리인 소울풍의 발라드를 본격 추구하게된 시발점으로 의미를 부여할만하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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