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 세계유산 등록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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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뛰어난 예술적.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북한의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등록시키려는 움직임이 일본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활발히 추진중이다.

내년 봄부터 이 고분군의 보존상태에 관한 상세한 기록과 자료작성등 세계유산 등록을 위한 기초작업이 시작되며 한국과 일본의 고고학자 10명이 현장조사를 위해 조만간 방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등록하자고 맨처음 제안한 인물은 일본화의 제 1인자로 알려진 히라야마 이쿠오 (平山郁夫.67) 전 도쿄예술대학장. 현재 일본문화재진흥재단 이사장으로 재직중인 그는 지난 10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유네스코) 의 특별고문 자격으로 닷새동안 북한을 방문해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록을 제안했었다.

청룡.백호.주작.현무가 생동감 넘치게 묘사된 강서고분, 막 하늘에서 내려온듯한 긴치마를 입은 선녀가 화려한 색채로 그려진 진파리 4호분 벽화 등을 직접 눈으로 본 히라야마씨는 “지난 72년 나라 (奈良) 현에서 발견된 다카마쓰 (高松) 고분에 비해 훨씬 박력이 있고 예술적으로 훌륭해 감탄했다” 고 회상했다.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록은 남북한과 일본 그리고 유네스코가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게 히라야마씨의 생각이다.

그는 “북한이 세계유산 등록을 위한 여러가지 절차를 무사히 마쳐준다면 2년내에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고 전망했다.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등록시키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보존상태에 대한 자세한 자료와 향후 보존계획을 세계유산 위원회에 제출해야 하며, 21개 회원국으로부터 만장일치의 찬성을 받아내야 한다.

히라야마씨는 유일범 북한문화예술 총국장에게 “세계유산 등록을 위해서는 고구려 고분군 주변에 평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게 급선무” 라며 일체의 군사시설을 철거하도록 조언했다고 말했다.

히라야마씨의 이러한 조언에 대해 북한측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분의 보존상태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타 수집은 내년 봄부터 시작되는데 이를 위한 컴퓨터등 기자재는 일단 히라야마씨 사재로 충당할 예정이다.

히라야마씨는 3백만엔 (약 3천만원)가량을 1차로 지원할 예정이며, 유네스코측과 협의해 수만달러 정도의 자금을 지원케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방북전 페데리코 마이요르 유네스코 사무총장과 만나 고구려 고분군 보존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고 전했다.

히라야마씨에 따르면, 북한은 고구려문화를 연구하는 일본내 학술단체인 '고구려회' (기마민족설을 주장한 에가미 나미오씨가 회장)에 미공개된 고분사진 등 40여점을 제공해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 것을 희망하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추가로 자료를 제공할 의사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주일한국문화원측은 “한.일학자들의 고구려 고분군 공동조사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제통화기금 (IMF) 한파' 가 몰아닥쳐 문화교류에 대한 이야기를 선뜻 꺼내기가 어려운 실정” 이라고 말했다.

도쿄 = 김국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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