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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먹어도, 잘 먹어도 걱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0호 35면

어느덧 아이의 잇몸에 송곳니가 뾰족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앞니와 어금니에 이어 송곳니까지 갖춰지면서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가짓수도 많아졌고, 좋아하는 음식도 생겼다. 우리 아이의 음식 선호도 1순위는 고기다.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고 잘 먹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중에서도 고기를 가장 좋아한다. 밥 안 먹는 아이 때문에 애태우는 엄마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아이가 아무거나 잘 먹고 고기를 좋아하는 것도 때론 걱정이 된다. 혹시 이 고기가 과연 아이에게 안전한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지난주 중국산 수입 육수에서 클렌부테롤이 검출된 것으로 인해 또다시 중국산 먹거리의 안전성이 도마에 올랐다. 아직도 국민의 뇌리엔 지난해 중국산 유제품의 멜라민에 대한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터라 연속해 일어나는 사건들은 중국산 먹거리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을 심어 주기 충분했다. 더군다나 이번 클렌부테롤 검출 사건은 멜라민과 달리 먹거리에 대한 범죄가 아주 근본적인 수준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걱정스럽다.

원래 클렌부테롤은 의약품의 원료로, 기관지 근육을 이완하고 혈압과 산소 전달량을 높이는 효과로 인해 주로 천식 치료에 쓰이는 약물이다. 그런데 왜 하필 천식 치료제가 고기 육수에서 나온 것일까? 어떤 종류이든 지정된 먹거리에 허용되지 않는 물질을 넣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다. 바로 원가를 낮추기 위해서다. 판매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원가를 낮추어 이윤을 극대화하려 노력한다. 이는 중간 유통 단계의 축소나 생산 시설의 개선 등 긍정적인 방식을 통해서도 추구되지만, 각종 첨가물과 화학약품을 첨가하는 방식으로도 추구된다.

클렌부테롤은 체내에 들어오면 지방과 단백질의 합성률을 높이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원래 인간을 비롯해 소나 돼지 등의 동물들은 음식을 통해 섭취한 포도당 중 쓰고 남은 일부는 간에 글리코겐의 형태로 저장하고 나머지는 지방으로 바꾸어 저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클렌부테롤은 포도당이 글리코겐의 형태로 저장되는 것을 방해하고 지방으로 저장되는 것을 촉진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클렌부테롤은 신체를 살찌우게 하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소나 돼지 같은 가축에게 클렌부테롤을 주입하면 성장 속도가 빨라져 도축 시기가 앞당겨지거나 같은 기간을 키우더라도 더 비대해지므로 판매 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 중국 축산업자들은 바로 이를 노리고 처음부터 클렌부테롤을 가축에게 먹여 키웠고, 이는 가축의 몸속에 고스란히 남아 이를 원료로 만들어진 고기 국물에까지 포함된 것이다.

이처럼 클렌부테롤 검출 현상은 먹거리에 대한 인간의 비양심이 가공 과정뿐 아니라 애초에 그 대상이 되는 농축산업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래서 더욱 걱정되는 일이다. 멜라민의 경우 처음부터 우유 속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우유를 유제품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첨가된 것이었다. 하지만 클렌부테롤은 축산물을 육수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첨가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 축산물 안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육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축산물을 통해 만들어진 모든 제품,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물론이거니와 이들을 가공해 만든 햄과 소시지, 우유와 치즈를 비롯한 각종 유제품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이야기로도 이어진다.

클렌부테롤뿐 아니라 각종 성장호르몬과 여성호르몬·항생제가 가축의 성장과 질병 예방을 위해 쓰인다는 것이 공공연히 알려져 있는 현실에서 이들에게서 나오는 먹거리들을 과연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인간은 살기 위해 먹는다. 그런데 먹는 것이 삶에 오히려 해를 끼친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밥 투정 안 하고 잘 먹는 아이를 보면서도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는 현실이 조금 버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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