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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은 옛 病院 차관을 갚으라니 억장이 무너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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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고희를 앞둔 한 남성이 음독자살을 기도했다. 관청 안에서. 지난 2월9일 오후 2시께,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 청사 9층 화장실에서 박순용(67) 여수성심병원 명예이사장이 제초제를 들이켰다.

실추된 명예, 죽음보다 참기 힘들어… 행정소송 등 통해 복지부와 다시 싸울 터 #[이슈인터뷰] ‘음독자살 기도’ 박순용 여수성심병원 명예이사장

위독한 상태의 그가 발견된 것은 약 30분 후. 그는 급히 인근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돼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2004년 1월, 400억 원에 달하는 병원을 직원들에게 물려줘 각 일간지 사회면 미담기사를 장식했던 박 이사장.

그런 그가 왜 자살을 기도한 것일까? 사건의 발단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2년 4월, 한려의료재단이 전남 여수에 성인병원을 짓기 위해 당시 보건사회부를 통해 독일재건은행(KFW)의 차관자금 1,002만5,000마르크(약 32억 원)를 빌렸다.

하지만 병원은 문을 연 지 얼마 안 돼 부도를 맞았다. 결국 이 병원은 법원 경매를 통해 1순위 근저당권자인 서울신탁은행이 단독으로 경락(競落)해 다시 공매에 부쳐졌다.

2년 후 이를 인수한 사람이 다름 아닌 박 이사장이었다. 그는 보사부에 의료법인 설립인가 신청을 냈다. 하지만 인가를 받는 데 무려 1년여가 소요됐다. 신설될 의료법인이 성인병원의 차관을 승계해야 인가를 내주겠다는 보사부 측의 강한 주문 때문이었다.

박 이사장은 “담당 공무원의 설득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도장을 찍었다”고 주장했다. 서명 후 3일 만에 서구의료재단이라는 이름으로 법인 허가가 났고, 여수성심병원으로 개원했다. 이후 1~2년에 한 번씩 부정기적으로 병원에 공문이 발송됐다. 내용은 차관자금을 갚으라는 것. 그러나 박 이사장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박 이사장이 명예직으로 물러나기 전까지 이런 상황은 계속됐다. 그러다 2005년 3월, 복지부가 박 이사장을 상대로 성인병원이 빌린 차관 원금 및 그 동안 연체된 이자를 포함해 약 160억 원을 반환하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007년 12월, 고등법원은 원고인 복지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한마디로 박 이사장의 패소였다. 급기야 지난해 12월에는 여수성심병원의 은행 계좌 및 박 이사장 개인재산에 대해 압류가 이뤄졌다. 병원은 순식간에 부도 위기로 내몰렸다. 박 이사장은 연일 복지부를 찾아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하지만 번번이 법원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통보만 받아야 했다.

그러던 중 자살을 기도했던 것이다. 지난 2월26일 낮 10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박 이사장을 찾았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그의 안색은 매우 어두웠다. 하지만 20여 년 전 일어난 일들의 세세한 부분까지 또렷이 기억해내며 자신의 심경을 거침없이 토로했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문제가 복잡한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가 질문하겠다. 성인병원 인수 당시 보사부를 통한 차관 제공 사실을 몰랐나?
“1987년 5월, 서울신탁은행이 공매공고를 냈다. 내가 경매를 차지한 것은 이듬해 3월이다. 2년 거치, 10년 균등분할상환 조건으로 4억6,100만 원의 계약금을 지불했다. 이로써 나는 원시취득자가 됐다. 한마디로 이 시점에서 이전의 모든 채권·채무관계는 소멸된 셈이다. 문제는 경매 차지한 병원을 다시 개원하기 위해 의료법인 설립 인가신청을 내면서부터였다. 의사가 아닌 사람이 병원을 경영하기 위해서는 의료법인 설립 허가를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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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에서는 패소

보사부는 허가를 안 내주고 1년 동안 이전 재단의 모든 부채를 승계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해왔다. 병원을 못하게 되면 계약금을 떼일 상황이었다. 1980년대 말, 그 정도 금액이면 엄청난 것 아닌가? 거치기간이 1년밖에 안 남았는데, 병원도 못하고 돈을 떼일 위기였던 것이다. 끝까지 버티려 했지만 당시 보사부 담당자의 구두약속만 믿고 그만 넘어가고 말았다.”

-담당자가 어떤 조건을 제시했다는 말인가?
“처음에는 돈 안 떼이고 병원 제대로 하고 싶으면 재전대계약서에 서명만 하라고 압박했다. 이런 압박이 제대로 먹히지 않자 보사부 담당자가 자신이 징계받게 생겼으니 제발 사정을 좀 봐달라면서 (박 이사장이) 쓰지도 않은 자금이니 강제집행이야 하겠느냐고 매달리더라. 꺼림칙한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상황이 너무 급박해 그 말을 들어준 것이다.”

박 이사장이 재전대계약서를 작성할 당시 실제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당시 담당자는 이미 복지부를 퇴직한 상태다. 당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복지부에 문의했으나, 복지부 관계자는 “당시의 일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입장도 없다”면서 “법원의 판단에 근거해 모든 일을 처리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본격적으로 병원을 운영하던 1989년부터 복지부가 소송을 제기하기 이전까지의 상황은 어떠했나?
“실제로 여수성심병원 설립 이후에도 복지부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차관자금을 갚으라는 공문이 1~2년에 한 번씩 오기는 했으나 내가 빌린 돈이 아니니 갚을 수 없다는 취지의 공문으로 응수했다. 물론 나중에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 법으로 해결할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래서 변호사를 찾아가보니 인지대만 2억 원이 나오더라. 내가 쓰지도 않은 돈인데 그 많은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재판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박 이사장은 자신이 늘 품고 있던 큰 의문 한 가지를 들려줬다. 그 핵심은 성인병원이 부도났을 때만 해도 보사부가 근저당 설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근저당 설정 논란

“보사부는 차관자금을 주면서도 근저당이나 가등기를 하지 않은 반면, 서울신탁은행은 1983년 7월 성인병원에 근저당을 설정해 17억2,500만 원을 대출해줬다. 때문에 서울신탁은행이 단독으로 순천지원에 부도난 병원의 경매를 신청했던 것이다. 정부 부처인 보사부가 왜 근저당을 설정하지 않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애초 보사부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는 말로 들린다. 그럼에도 보사부가 법인 설립 과정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경매 신청 3개월 후인 1986년 4월, 서울신탁은행이 29억7,000만 원에 경매를 차지하면서 상황은 종결된 것이나 다름 없다. 이때 보사부의 차관문제도 끝나버린 셈이다.”

또 다른 지적도 이어졌다. 1996년 3월, 감사원은 차관자금 문제와 관련해 복지부에 공식 질의를 했다. KFW 차관을 회수하지 못한 상황(담보 미확보)에서 왜 여수성심병원에 세계은행(IBRD)의 차관을 제공했느냐는 것이 요지였다. 당시 복지부는 “서구의료재단과 한려의료재단은 별개의 법인”이라면서 “서구의료재단은 정부로부터 KFW 차관자금을 제공받은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박 이사장은 “복지부 스스로 내가 빌리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 그 돈을 갚으라는 것은 너무 부당한 처사 아니냐”고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에서 패소했다. 복지부가 소송을 제기했을 때 이런 내용이 법정에서 고려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인가?
“재전대계약서에 서명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제대로 조사해 달라고 몇 번이나 요구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직원의 잘못도 인정되지만, 보사부가 압력을 행사한 내용은 증거불충분이라면서 계약서에 서명한 이상 갚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계약서 작성 당시의 보사부 담당자가 증언했다면 충분히 증거가 됐을 법한데….
“내게 약속했던 당시 사무관을 증인으로 신청했으나 그는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분노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다. 해당 담당자가 퇴직하자마자 이번 소송이 시작된 것으로 안다. 화근이 될 만한 인물이 사라지자 본격적 행보를 보인 것 아닌가? 그리고 그 사람이 법정에 불출석함으로써 이 모든 사실이 은폐된 것 아닌가?”

-지난해 12월 강제집행이 이뤄졌다. 이후 여수성심병원 운영은 어떻게 됐나?
“병원 통장 계좌를 모두 압류했다. 인터넷에 그런 내용의 기사가 뜨자마자 자금 흐름이 막혔다. 40억 원의 사재를 털어 긴급 수혈했지만 부도 직전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병원을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난 이후 내 평생의 꿈이던 장학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 병원 사정이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세인들의 평가는 다르지 않나? 병원을 버리고 학교로 도망갔다는 원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면 내 인생은 무엇이 된다는 말인가? 평생 이룬 명예가 땅바닥에 떨어지고, 많은 지탄과 원성을 평생 안고 가야 할 것 아닌가? 그러니 내가 어찌 편할 수 있겠나? 그래서 내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진실만은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박 이사장에 따르면 그는 강제집행이 있은 후 복지부 청사를 연일 드나들었다고 한다. 복지부 관계자들을 만나 억울하다며 하소연했지만 반향은 없었다. 돌아오는 답은 단 하나였다. 사법부의 판단이 있으니 행정부는 그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법 이전에 이번 사건의 도화선과 까닭을 생각해 달라고 눈물까지 흘리며 사정했다. 병원이 무너지면 340여 명의 직원, 그리고 1,000여 명에 달하는 그 부양가족들의 생계는 어떻게 되겠느냐며 말이다. 내가 억울한 것을 떠나 이 사람들만은 살려야겠다는 심정으로 매달렸다.”

“죽어서라도 압류 계좌 풀리기 바라…”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판결이 난 이상 계속 상환하지 않으면 또 다시 문제가 발생할 텐데.
“한 푼도 갚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전 병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침상 등의 장비대금에 한해서는 갚을 용의가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감가상각을 고려해 지급할 생각이다. 하지만 차관 총 금액과 그 이자를 모두 지불하라는 현 결정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앞으로 행정소송 등을 통해 바로잡을 생각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다시 계약 당시의 문제점 하나를 더 들었다.

“나중에 따져보니 장비대금은 263만8,000마르크밖에 안 됐다. 그래서 처음 재전대계약을 할 때는 당연히 그 부분만 기입돼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덫을 놓았더라. 계약서에는 장비대금이라고 해놓고 그 옆 괄호 안에 차관자금 전액인 1,002만5,000마르크를 명기해 놓은 것이었다. 당시 마르크화에 대한 개념이 약했던 우리 측 변호사가 실수로 이 부분을 확인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정부기관이 그런 식으로 속였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공교롭게도 자살을 기도한 장소가 복지부 청사 내 화장실이다.
“사실 죽기 전에 장관을 만나려고 했다. 그 화장실이 있는 9층이 바로 장관실이 있는 곳이다. 오전부터 계속 기다렸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그 전에 복지부 청사를 돌며 여러 사람을 만났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이해해 주는 공무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에게 내가 죽은 뒤인 오후 늦게 열어보라며 유서를 건넸다. 더 이상의 미련은 없었다.”

사건이 있고 며칠 후 여수성심병원의 압류 계좌 2개가 해지됐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박 이사장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월 말까지 안 풀렸으면 진짜 부도가 났을 것이다. 내가 2월 초에 죽으면 중순쯤 풀리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졌는데, 내가 살고 풀렸으니 다행이다.”

인터뷰가 있은 며칠 후 박 이사장은 퇴원했다. 당분간 서울의 거처에서 통원치료 받으며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는 계획이었다. 그 첫 일은 그가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나주 영산포중·고등학교의 입학식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현재 여수성심병원 문제와 관련해 복지부의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는 듯하다.

지난 3월4일,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월간중앙>과의 통화에서 “병원 직원 급여 문제 등의 기본 운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계좌 2개를 해지한 것은 맞으나, 그 이외에 추가 조치는 현재 없다”면서 “법원의 확정판결이 있기 때문에 (복지부) 임의로 처리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병원 인수~자살 기도, 주요 사건

1982년 4월 한려의료재단의 성인병원,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가족부) 통해 독일재건은행(KFW) 차관자금 1,002만5,000마르크(약 32억 원) 빌림
1985년 10월 성인병원 부도
1986년 4월 1순위 근저당권자인 서울신탁은행, 법원 경매 통해 29억7,000만 원에 단독 경매 차지
1988년 3월 박순용 이사장, 공매 통해 성인병원을 46억 원에 인수(원시 취득)
4월 박순용 이사장, 보사부에 새 의료법인 설립 인가 신청
1989년 4월 의료법인 서구의료재단(여수성심병원) 설립 인가
1996년 3월 감사원, 보사부 측에 여수성심병원에 제공한 차관자금 담보 미확보를 지적. 보사부는 “여수성심병원은 차관을 제공한 성인병원과 별개의 법인이며, 여수성심병원은 차관자금을 지원받은 사실 없다”고 답변
2004년 1월 박 이사장, 자산규모 400억 원대로 키운 여수성심병원을 직원들에게 넘기고 명예이사장으로 물러남
2005년 3월 박 이사장을 상대로 복지부가 성인병원 차관 원금 및 연체금 등 160여 억원 반환소송 제기
2007년 12월 고등법원, 원고(복지부) 승소 판결. 대법원, 심리불속행 기각(박 이사장 패소)
2008년 12월 여수성심병원 통장과 박 이사장 개인 재산에 대한 압류 등 강제집행
2009년 2월 박 이사장, 복지부 청사에서 음독자살 기도. 복지부, 압류한 여수성심병원 은행계좌 중 2개 해지
3월 박 이사장, 복지부 상대로 행정소송 준비 중

글■김상진 월간중앙 기자 [kine3@joongang.co.kr] / 사진■이찬원 월간중앙 사진팀 차장 [leon@joongang.co.kr]

<월간중앙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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