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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시대 맞는 관가표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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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처음으로 여야 정권교체를 맞는 정부 각 부처의 표정은 '기기묘묘' 하다.

기대.착잡.걱정 등 개인적으론 각기의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상당한 인사선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특히 안기부.군.검찰.경찰 등 권력과 특수관계에 있는 부처관계자들은 아예 말을 아끼고 있다.

뒤에서는 이런 저런 말을 많이 하지만.

[군·안기부]

…안기부의 감회는 남다르다.

"만감이 교차한다" 는 게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 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정치인 김대중과 정보기관 중앙정보부 - 안기부는 악연 (惡緣) 으로 이어져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월북한 오익제 (吳益濟) 씨 편지공세 등을 둘러싸고 金당선자에게는 앙금이 남지 않았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반 (反) DJ에 섰던 고위인사와 일부 직원들 사이에선 "처분만 기다리고 있다" "마음의 각오를 했다" 는 체념어린 목소리도 나온다.

한 직원은 "동료들 사이에 '이번 기회에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는 긍정적 반응도 없지 않지만 닥쳐올 파장에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 라고 전했다.

다른 직원은 "50년만에 첫 정권교체인데 물갈이 규모를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느냐" 고 말했다.

다만 호남출신으로 안기부에 오래 근무한 엄익준 (嚴翼駿) 3차장의 거취가 관심사다.

그러나 차관급 이상과 몇명의 실장 정도가 자연스럽게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다.

한 당국자는 "비전문가를 자기 사람이라고 기조실장에 임명해 내부를 엉망으로 만드는 무원칙한 인사는 없지 않겠느냐" 는 것이다.

…19일 김동진 (金東鎭) 국방장관이 주재한 차관보 간담회에서는 金장관이 업무에 공백이 없도록 정권 인수팀에 협조를 당부한 것 외에 선거 얘기는 일절 없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국방부 장군식당에서 식사하던 장군들도 평소와 달리 거의 말을 주고 받지않았다는 후문. 한 소장은 "임관후 처음 맞는 정권교체에 당황스러웠지만 새 군통수권자를 맞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뿐" 이라면서도 향후 군 인사와 혹 있을지도 모를 조직개편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장성급들은 내년 10월로 임기가 끝나는 윤용남 (尹龍男) 합참의장.도일규 (都日圭) 육군참모총장의 임기가 보장될지에, 영관.위관급들은 조직감축에 신경을 썼다.

한 관계자는 "金당선자가 군 인사의 불공정한 관행을 없애겠다고 한 점은 공감하지만 YS정권처럼 깜짝쇼로 군을 매도해서는 안된다" 고 강조. 안희창.오영환 기자

[행정부]

…공직자들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중심으로 현 난국을 돌파해야 한다" 는 입장이면서도 야당으로의 정권교체라는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상황 탓인지 긴장감을 감추지 않았다.

더구나 공무원 감축은 기정 사실이어서 당장 자신의 신상변화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총리실의 한 국장은 "공직사회가 반드시 변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면서도 "불안감은 없지 않다" 고 피력했다.

다른 당국자는 "공직사회에도 앞으론 호남출신들에 대한 배려가 강화되지 않겠느냐" 고 전망하고 "과거의 '불공평' 을 보전한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또 다른 양상의 지역감정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된다" 고 말했다.

통일원과 외무부는 金당선자가 통일.외교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만큼 새정부에선 보다 활력있고 내실있는 통일.외교정책이 추진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하는 분위기다.

특히 통일원 관계자들은 金당선자가 '통일원 강화' 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만큼 그동안 상당히 위축됐던 통일원 위상이 올라갈 것이라며 내심 큰 기대를 걸고 있는 표정들. 복지부와 노동부는 金당선자가 소외층 사회복지문제와 실업대책에 남다른 관심을 표시해온데 주목하면서 부 (部) 의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건교부 관계자들은 민원이 끊이지 않았던 그린벨트.고속철도 사업추진에 뒷처리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다소 불안한 표정이다.

교육부는 사교육비 축소등에 비중을 둔 정책변화를 예상했다.

선거주무 부처인 내무부는 이번 15대 대선에서 관권선거 시비가 없었던 점을 자부하며 새 정권이 이를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분위기. 또 전통적으로 내무 공무원 가운데에는 호남출신이 많아 새 정부와 '호흡조절' 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일.안희창.오영환.최상연.이영종 기자

[검찰·경찰]

…검찰 관계자들은 19일 이번 대선 결과에 따른 정권교체가 향후 검찰 조직 운영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 검찰 간부는 "김대중 (金大中) 당선자가 현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공약한 만큼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새로운 인물이 전격 발탁되는 등 '인사 태풍' 이 불 수도 있다" 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金당선자가 정치보복을 않겠다는 점을 누누이 공약한 점으로 볼 때 93년 문민정부 출범직후와 같은 대대적인 사정차원의 수사는 이뤄지지 않겠지만 시국사범 등에 관한 金당선자의 인식이 역대 대통령들과 차이가 있어 공안사건 처리에는 다소의 변화가 있을 것" 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선거과정에서 폭로된 金당선자의 비자금 의혹 사건은 이미 총장이 직접 수사유보 방침을 밝혔기 때문에 적정한 선에서 매듭지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중" 이라며 국민화합 차원에서 한나라당측이 고소를 취하해 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는 인상을 내비쳤다.

…경찰청은 대체로 "이번처럼 경찰이 선거에 엄정 중립을 유지한 적이 없었다.

선거 경비도 완벽했다" 며 야당의 집권에 애써 태연한 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차기 정권의 공약사항 등을 다시 검토하는 등 경찰행정의 변화방향을 점치느라 부산했다.

한 관계자는 지방경찰제 도입에 대해 "권력이 중앙집권화된 우리나라 풍토에서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지 의문이며 더욱이 현행처럼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시될 경우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 며 예민한 반응을 나타냈다.

특히 경찰청 직원들은 황용하 (黃龍河) 경찰청장의 후임으로 누가 치안 총수에 오를 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벌써부터 하마평이 무성하다.

오는 1월중 있을 경무관 승진인사에서 국민회의의 의중이 상당부분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도는 가운데 승진후보자들은 선거결과가 미칠 영향을 따져보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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