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자동차업계 소비자 무서워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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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근 여기저기서 국산품 애용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국산차를 사랑하자는 것은 소비자 단체들만의 주장은 아닌듯 하다.

국내 업체들이 내심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국제통화기금 (IMF) 지원과 수입선다변화제도의 조기해제등으로 업계의 긴장감은 고조되고있다.

그들은 '오로지 믿는 것은 소비자뿐' 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국내 메이커들이 그런 기대감을 가질만큼 소비자들에게 최선을 다했는지를. 2년전부터 자동차 업계를 출입한 이래 소비자들에게서 거의 매일같이 전화가 걸려왔다.

"유치원 선생인데 운전중 승합차 문이 저절로 열리는 바람에 어린이들이 크게 다칠뻔 했다" "차를 산지 일주일도 안돼 도색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등등. 소비자들의 전화내용을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연들이 많다.

미국이나 유럽의 자동차 업계에서는 있을수 없는 일들이다.

소비자보호원에는 한해에 수백건씩의 자동차관련 민원들이 몰려든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억울한 심정을 속시원히 풀어주는 방향으로 해결되었다는 얘기는 듣기 어렵다.

서비스 불감증만 문제가 아니다.

우리 운전자중 자기가 타는 차의 안전도가 어떤지 제대로 알고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외국 유명모터쇼를 다녀보면 자기 차의 충돌시험이나 안전도 검사내용을 상세하게 전시하는 업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국내 메이커중 충돌시험 전 과정을 구체적으로 시원하게 공개한 곳이 있었던가.

얼마전 한 기관에서 임의로 충돌시험을 실시한 적도 있었다.

업체들은 이 결과조차 신빙성이 없다며 공개하지 말라는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소소한 부분에까지 소비자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도 필요하다.

서비스를 담당하는 한 업체 직원은 "일감이 너무 많다" 며 "손수 고쳐도 될 것까지 서비스 공장에 가져온다" 고 투덜댔다.

이런 마인드로 고객 서비스가 제대로 될 것인가.

국내 업체들이 적당한 가격으로 상당한 수준의 차를 만들어내는 것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국산차는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때문에 지금까지 국내시장은 공급자중심 시장 (서플라이어 마켓) 이었다고 할수있다.

하지만 이제 제도적으로나 소비자 정서상으로 시장의 완전개방은 시대적인 흐름이다.

국내 업계는 더이상 보호막이 처진 시장상황 속에 안주해 있을수 없다.

변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생존의 법칙중 '소비자를 무서워하라' 는 것이 중요한 명제임을 업체들은 새삼 되새겨야 할 것이다.

박영수 경제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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