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옷에 일부러 음식 묻힌 뒤 옷 사주며 거래 성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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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등에 업고 사업을 확장하더니 결국 된서리를 맞았다” “해외시장 개척과 부산·경남 지역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

박연차 회장(왼쪽 사진)은 신발 사업 하나만으로도 경남 김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이 됐다. 특유의 친화력을 바탕으로 동업자들의 환심을 사며 승승장구했다. 강금원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후원자로 알려지기 전까지 부산에서 무차입 경영으로 섬유회사를 다져 온 조용한 기업인이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 역할을 해온 박연차(64) 태광실업 회장과 강금원(57) 창신섬유 회장이 구속된 뒤 나오는 엇갈린 평가다. 두 사람은 사양산업이라는 신발과 섬유 분야에서 성공한 기업인들이다. 외환위기 때는 똑같이 엄청난 환차익을 얻는 운도 따랐다. 권력에 지나치게 줄을 댔다는 공통점도 있다. 기업인이 권력에 줄을 대면 수완이 좋아 보일 수 있고, 권력을 무시하면 미련해 보일 수 있다고 한다. ‘기업인으로서 박연차 회장’과 ‘기업인으로서 강금원 회장’을 들여다 봤다. 편집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천부적인 사업가’라는 게 주변 인사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말 송년행사 때 박 회장은 최대 거래처인 미국 나이키 인사들을 부산의 한 호텔에 초청했어요. 폭탄주가 몇 순배 돈 뒤 박 회장은 갑자기 색소폰을 잡고 딱 한 곡을 연주하더군요. 그는 원래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어렵게 산 사람이라 악기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죠. 나이키 인사들에게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라 사교성이 뛰어나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2년 전부터 색소폰 개인 강습을 받았다고 해요. 연습 장소는 그가 인수한 정산CC 골프장이었답니다.”

박 회장의 사업 근거지가 있는 김해지역 한 경제 원로의 말이다.

신발공장 사장에 불과하던 박 회장이 성공한 기업인으로 급부상한 것은 1987년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인 미국의 나이키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80년에 태광실업을 설립한 그는 나이키 운동화를 납품하던 화승에 재하청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했다. 그런데 나이키 본사가 품질을 높이 평가해 87년에 직접 박 회장과 OEM 계약을 했다. 94년 베트남에 진출할 때는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1년 만에 흑자를 내 주변을 놀라게 했다. 태광실업은 중국과 베트남 공장까지 합쳐 나이키 전체 물량(2억5000만 켤레)의 약 7%인 연간 1700만 켤레를 맡고 있다. 전 세계 600여 개 협력업체 중 최고급품을 주로 납품한다. 지난해 기준 매출 4500억원. 국내 신발업체 중에서는 독보적 1위다. 부산지역 신발업체인 삼덕통상 문창섭 대표는 “박 회장은 추진력이 가장 돋보인다”고 말했다.

“90년대 초 나이키는 주문 물량을 대만 기업에 넘겨주려고 했어요. 그러자 나이키와 협상하기 위해 과감히 새 기계로 바꾸더라고요. 베팅이었죠. 신발업계 처음으로 컴퓨터 디자인 시스템도 도입했어요.”

박 회장은 사업상 정공법만 쓴 것은 아니다.

홍인길 전 국회의원은 “젊은 시절부터 박 회장을 알았는데 손이 크고 호기와 수완이 대단했다”며 “나이키 본사 사람들이 폭탄주를 못 마시니까 맥주 대신 물을 섞은 ‘물폭탄’을 건네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었다”고 회고했다. 사석에서도 해외 바이어의 마음을 사로잡는 사업가적 기질이 있었다는 귀띔이다.

베트남 진출 당시에는 정부 관리를 만나 선물이나 금품이 통하지 않자 부부를 식사 초대했다. 그런 뒤 실수를 가장해 음식물을 정부 관리의 부인 옷에 묻게 했다. 그에게 새 옷을 사주고 사업을 성사시켰다는 일화도 있다.

박 회장을 잘 안다는 부산 출신의 한 기업인은 “방한한 바이어들에게 직접 가져온 30년산 양주로 폭탄주를 먹이고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 돈을 호주머니에 넣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자신이 감투를 쓴 단체에 연말이면 특별 보너스를 줘 감동시키는 등 통 크게 행동해 ‘기업인 전두환’이라는 별명도 있었다”며 “한번은 베트남에서 행사가 끝난 뒤 수고했다며 회식 자리를 만들어 줬는데 그 자리에서 진행요원들에게 100만원(수표 2장)씩 나눠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5∼6년간 사업 확장에 주력했다.

27홀 규모의 골프장인 정산CC를 인수하고, 농협으로부터 정밀화학업체 휴켐스를 사들였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이뤄진 일이라 특혜 의혹을 받는 대목이다.

운도 많이 따랐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베트남과 중국에서 생산한 신발을 수출해 3억1000만 달러를 받았다. 그런데 1달러에 800원하던 것이 1800원으로 치솟아 2000억원대의 환차익도 거뒀다. 박 회장이 8년째 회장으로 있는 김해상공회의소의 류치원 사무국장은 “지역에서 가장 많은 외화를 벌어들인 국제적 기업인으로서의 활동은 가려지고 뇌물 거래 등 어두운 면만 부각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남도청 고위 관계자는 “부동산 등 개발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지역 발전보다는 비자금을 조성해 개인적 용도로 헤프게 쓴 것이 화를 초래한 것”이라고 말했다. 태광실업은 세계적 경기 침체 여파로 나이키의 주문량이 크게 준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기자가 찾은 이 회사 정문에는 보안요원 두 명이 배치돼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심재우 기자, 김해=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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