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기를 찾아서]45.만리장성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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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오늘은 만리장성에서 엽서를 띄웁니다. 나는 생각했던 대로 베이징공항에서 곧바로 만리장성으로 향했습니다. 관광객들을 위하여 개축하고 단장한 바다링(八達嶺)을 사양하고 그나마 옛모습이 비교적 잘 간직되고 있다는 사마대(司馬臺)를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곳 역시 만리장성을 그 당시의 의미로 읽는다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합니다. 자동차와 비행기의 속도와 공간정서에 익숙해진 우리들로서는 우선 만리장성의 크기부터 당시의 정서로 읽기가 어려움을 깨닫습니다. 더구나 전쟁의 방법이 판이하게 달라진 지금에는 장성을 쌓고 근심을 덜었던 당시 사람들의 안도감을 실감할 수 없음은 물론이며 더구나 이 장성 앞에서 말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었던 북방민족의 체념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만리장성을 비록 당시의 의미로 만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세찬 바람이 적설을 헤치고 있는 성벽에 앉아서 애써 과거의 정서를 길어 올리고 있습니다. 첩첩연봉(疊疊連峰)위를 굽이굽이 달려서 아스라히 하늘 속으로 뻗어간 장성 위로 시선을 달리며 한편으로는 아득한 과거를 돌이켜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인류사의 유장한 흐름을 되새기게 됩니다. 만리장성을 찾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장대한 축조물을 앞에 두고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날새들도 넘기 힘든 이 험준한 산맥의 능선 위에 다시 만리가 넘는 성벽을 쌓아놓은 그 엄청난 역사(役事)에 감탄하기도 하고 여기에 바쳐진 수많은 사람들의 노역(勞役)에 몸서리치기도 합니다. 나 역시 전쟁과 부국강병(富國强兵)등 우리들이 수천년 동안 골몰해왔던 삶의 내용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깊고 어두운 우물에서 까마득히 잊고 있는 생각을 길어 올리듯 생각이 사무칩니다. 만리장성은 제왕의 힘과 천하통일을 보여주는 고대제국의 압권입니다. 그리고 천하통일은 또 막강한 통치력의 증거가 되며,통치력은 곧 문화의 높이를 보여주는 척도라 하였습니다. 유럽이 알프스산맥 서쪽 땅에서 한번도 통일제국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시종 분립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음에 비하여 광대한 중국대륙의 통일은 동양적 통합력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동양문화의 원융성(圓融性)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만리장성은 화이(華夷)를 구분하는 폐쇄성이며 동시에 중화사상(中華思想)이라는 독선(獨善)의 징표(徵標)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답적 준론은 스산한 폐허에 앉아있는 나의 감성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분석적 사념보다는 장성을 이루고 있는 벽돌 한장 한장에 응고되어 있는 무고한 사람들의 고한(膏汗)을 떠올리는 감상에 젖게 됩니다. 이 혹독한 노역에 끌려온 젊은이의 아픔이 가슴을 적십니다. ‘높은 산에 올라 부모님 계신 곳을 바라보니 부디 몸조심하여 죽지 말고 돌아오라는 부모님 말씀이 들리는 듯하다(陟彼岵兮 瞻望父兮…上愼 哉 猶來無死)’던 시경의 척호(陟岵)장의 정경이 눈앞에 선합니다. 비단 이 만리장성의 축조뿐만이 아니라 성곽,궁궐등 수많은 토목공사나 전쟁으로 말미암아 뿔뿔이 찢어져야 했던 이산(離散)의 아픔이 멀리 장성을 타고 강물처럼 가슴속에 흘러듭니다. 내게는 만리장성에 바치는 모든 경탄의 소리들이 슬픕니다. 거대한 것에 대한 종교적 숭앙에 가까운 경탄이란 실상 진솔한 인간적 아픔을 보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몽매에 지나지 않음을 새삼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리장성이 갖는 최소한의 의미는 없을까. 수많은 사람들의 고한이 결코 헛수고가 아닐 수는 없을까. 우리들에게 한줌의 위로로 남을 수는 없을까. 문득 만리장성은 방어(防禦)를 위한 방벽이라는 당신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공격을 위한 거점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성벽이라는 사실이 구원이었습니다. 지극히 저상한 마음을 위로해주었습니다. 공격의 무기를 유산으로 갖는 것에 비하면 과연 방어의 방벽이란 사실은 과연 역사가 베푸는 위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세계의 이곳 저곳을 주마(走馬)하는 동안 곳곳에 세워진 거대한 성채와 신전들을 보면서 항상 그 밑에 묻힌 수많은 사람들의 주검과 노역을 외면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막상 만리장성에 올라 이것이 공격의 기지(基地)가 아니라 방어의 벽이라는 깨달음은 무척이나 귀중한 느낌입니다. 비단 이번 중국에서 만난 만리장성과 자금성(紫禁城)뿐만 아니라 지금껏 만난 모든 성채와 신전 역시 방어의 축조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그 위용을 과시함으로써 함부로 침략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하고 전쟁을 사전에 예방하는 예방전쟁의 역할을 수행해 왔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그것에 배어있는 애끊는 별리의 아픔과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느 한 사람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감히 넘볼 수 없는 위용으로 우뚝 서서 침략을 예방하였다면 크게 다행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인류의 귀중한 유산이 되고 지혜의 소산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실 이러한 축조공사는 그야말로 전쟁과 같은 것이었으며 전쟁과 같은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것 또한 사실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노역은 분명 전쟁 그 자체보다는 나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더구나 오늘 우리가 쌓고 있는 전쟁무기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만리장성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마음은 좀처럼 가벼워지지 않습니다. 만리장성의 대역사를 찬탄할 수도 없으며 그것의 무모함을 탓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리장성을 찬탄할 수 없는 까닭은 장성의 축조는 민초들의 곤궁과 분노와 봉기를 낳고 천하는 다시 대란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며 그 무모함을 탓할 수 없는 까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성을 쌓아 전쟁을 막으려한 고심(苦心)은 어차피 공격용과 방어용의 구분이 애매해진 무기들의 집적에 골몰하고 있는 우리들보다는 지혜롭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당태종(唐太宗)은 장성으로서도 막지 못했던 흉노의 침입을 화친(和親)으로 국경의 우환을 없애고 돌아온 이세적(李世勣)장군에게‘인현장성(人賢長成)’이란 네 글자를 써주었습니다. 사람이 장성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방어보다는 화친이 낫고 장성보다 사람이 나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오늘도 옛날과 다름없이 세차게 쇄도해 오는 갖가지의 공세 앞에서 장성을 쌓기는커녕 남아있는 울타리마저 서둘러 헐어야 하는 우리의 난감한 현실이 절실하게 떠오를 뿐입니다. 세계화의 논리를 앞세우고 더욱 거세게 쇄도하는 외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압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사정없이 허물고 있는 도도한 유행도 다름이 없습니다. 우선 나만이라도 방어할 수 있는 담장을 쌓을 수는 없을까. 그리고 기마병(騎馬兵)보다 더 혹독하게 우리의 삶을 유린하는 광고의 공략을 막아낼 마을의 성을 쌓을 수는 없을까. 우리의 인간적 가치와 경제를 지킬 수 있는 나라의 성을 쌓을 수는 없을까. 그리고 이러한 진지(陣地)들을 연결하여 20세기를 관류해온 도도한 쟁투의 역사를 그 앞에 멈추어 서게 할 21세기의 벽을 쌓을 수는 없을까. 겨울 바람이 부딪쳐 메아리치는 산상에서 생각은 하염없습니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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