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건축 어울리는 새로운 산사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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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자연과 건축은 어떤 식으로 만나야할까. 이상해.이선복 교수, 최열.정기용(왼쪽부터)씨가 그 원칙과 방향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 해인사 신행문화도량이 들어설 자리. 사진 아래의 상가는 전면 녹지로 조성될 예정이다.

해인사가 추진 중인 '신행문화도량' 건립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환경친화적 시설이다"(해인사), "환경 훼손이다"(불교환경단체)라는 대립이 팽팽하다.

'자연과 인공''전통과 현대''생태와 개발'이란 2분법적 발상을 넘는 '제3의 지혜'는 없을까. 환경운동가 최열(55.환경재단 상임이사)씨와 고고학자 이선복(47.서울대 고고학)교수, 이번 사업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건축가 정기용(59.기용건축사무소 대표)씨.이상해(56.성균관대 건축학)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운니동 아름지기(문화유산 보존 단체.이사장 신연균) 사무실에 모여 좌담회를 열었다. [편집자]

▶이상해=신행문화도량이 현대식 건물이라 반발이 큰 것 같다. 경관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이해된다. 하지만 현대식으로 짓는다고 자연을 망치고 전통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신축될 건물은 폐교된 초등학교와 현재 쇼핑센터가 있는 부지에 짓기 때문에 자연훼손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미 훼손된 땅을 새롭게 되살리는 일에 가깝다.

▶최열=천년고도 경주 입구에는 고층 아파트가 있다.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서울 조계사에 짓고 있는 현대식 불교문화센터도 사찰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전통 혹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을 본 적이 거의 없다. 해인사도 33m 높이의 청동불상을 만들려다 무산된 적이 있다. 새 건물은 그 사업의 연장이 아닌가.

▶정기용=지난 50여년 그토록 많은 건물을 지었으면서도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건물이 없다는 게 큰 불행이다. 이번에는 그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다. 설계 작업에만 2년여를 준비했고, 전문가 자문회의도 다섯차례 여는 등 절차가 엄격했다. 설계경기(공모)를 두차례 나누어 한 것도 국내 처음이다. 환경.생태란 이름으로 본질을 가리면 곤란하다.

▶이선복=파괴된 자연을 복원한다면 의미있는 일이다. 현재 복원 중인 청계천 문제도 그렇다. 망가진 걸 그대로 둔다고 환경이 복원되는 건 아니다. 상황.본질과 관계없이 환경.생태를 이유로 무조건 반대하면 그것도 폭력일 수 있다. 그러나 수덕사.송광사 등 사찰들이 유행처럼 지었던 성보박물관이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은 별로 없다.

▶이상해='이용'과 '훼손'을 혼동하면 안 된다. 신행문화도량은 기존의 상가를 헐어내고 건물.조경 모두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최선을 다했다. 현장을 가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해인사 자체를 보존하는 일도 된다. 사람이 많이 오다 보니 지금의 해인사는 자꾸 이것저것을 덧붙이려고 한다. 원형에 손상이 갈 수 있다.

▶최열=프랑스 국립도서관을 보고 많이 놀랐다. 현대식 건물이면서도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아직 볼 수는 없지만 신행문화도량도 그런 문화적 실험을 한다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갈 동판(銅版) 팔만대장경 조성에는 공감할 수 없다. 문화재적 가치가 얼마나 될까. 또 세계문화유산인 장경각 인근에 암자(내원암)를 지으려는 해인사의 움직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정기용=보통 나무 수명은 1000년이다. 현재 700년 된 대장경은 어떤 식으로든 보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목판 대장경도 처음부터 문화재를 의식하고 만들진 않았다. 다만 암자는 문제다. 재논의할 필요가 있다. 세계문화유산 500m 이내는 어떤 형태로든 변경할 수 없다는 게 유네스코 규정이다.

▶이선복=사회 전체의 문화적 안목과 관계된 문제다. 실제 할 수 있는 일은 따지지 않고 명분만, 구호만 외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번 시설은 전통 건축의 복원과 관련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또 우리 문화재 행정의 현주소를 드러낼 수 있다. 사실 지금의 문화재 정책은 현실을 무시하고 책상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상해=그런 면에서 신행문화도량은 자연과 건축, 전통과 현대에 대한 올바른 방향과 원칙을 세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경주 불국사 여관촌은 한옥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다고 그게 전통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지금까지 개발이란 명분 앞에서 많은 문화재가 훼손됐으나 이번에는 그와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다.

▶정기용=획일적인 문화재 행정도 달라져야 한다. 문화는 시대에 따라 바뀐다. 나무와 기와를 써야 문화재로 인정되는 현실에 동의할 수 없다. 한국 건축의 핵심은 재료가 아니라 채움과 비움이 적절히 안배된 공간 구성에 있다. 새 건물은 그런 '어법'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다.

▶최열=그건 두고봐야 안다. 일단 활발한 대화를 해야 한다. 공론화가 필요하다. 해인사를 제외한 다른 곳에선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 반발이 이는 것도 당연하다. 분명 친환경적 건물이라면 반대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눈도 많이 높아졌다.

▶이선복=입안.토론과정 등을 처음부터 공개했다면 이런 논란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정기용=전개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그간의 내용을 알리는 전시회.심포지엄을 계획하겠다. 이번 기회에 환경은 자연과 인공을 포괄하는 총체적 개념이란 걸 이해했으면 좋겠다.

정리=박정호 기자<jhlogos@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신행문화도량은] 일반인 위한 종합불교센터…일부에선 "자연훼손 우려"

'제2의 해인사'로 불리는 신행문화도량은 법당.산사체험관.숙소.도서관 등을 갖춘 일종의 종합불교센터다.

연평균 6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현재의 해인사는 승려들의 수행 장소로 특화하는 한편 일반인 대상의 수행.포교 공간을 별도로 마련한다는 것이다.

1989년 해인사 임회(최고 의결기구)에서 단지 조성을 결의했고, 2002년 12월 설계경기(공모)를 위한 현장 설명회와 심포지엄을 열면서 구체화됐다.

해인사 본찰에서 남쪽으로 1.5㎞가량 떨어진 옛 해인초등학교 및 쇼핑센터 부지 1600여평에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불교환경단체 등 일부에선 새 건물이 국립공원 구역에 위치해 자연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고, 수행 분위기 진작에도 도움이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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