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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판이 바뀌었습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09호 35면

요즘 다들 고민이 많지만 남다른 역량과 불굴의 의지로 중견기업을 손수 일구어낸 분들의 고민이 특히 깊은 것 같습니다. 이분들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된 성공의 비법은 ‘신기(神氣)’와 ‘열정(熱情)’이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자기 분야의 밑바닥에서 출발하여, 주체할 수 없는 헝그리 정신과 열정으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말하는 1만 시간의 법칙을 통과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감각 즉 신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끔 한 수씩 보여주며 앞에서 끌기만 하면 저절로 존경과 생산성이 보장되는 리더십으로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수십 년간 아무 문제가 없었던 자신의 리더십이 먹히지 않고, 세상을 보는 눈은 점점 침침해지기 시작한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조찬 강연을 듣기도 하고, 저녁에는 명문대 최고위 과정에 나가는 등 학구열을 불태워 봅니다. 그러나 조직을 이끌어 가야 하느냐? 조직을 타고 가야 하느냐? 즉 전륜구동(前輪驅動) 리더십을 택할 것인가? 후륜구동(後輪驅動) 리더십을 택할 것인가? 하는 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의 판이 바뀌었습니다. 아날로그 판에서 디지털 판으로, 이데올로기 판에서 집단이기의 판으로, 획일성 판에서 다양성 판으로, 한(恨)의 판에서 기(氣)의 판으로 세상의 판이 바뀌었답니다. 문제는 바뀐 판 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오너들 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대리로 강등된 분들이 꽤 있습니다. 오너에게 결재를 받으러 오는 직원이 비서실에 있는 친구에게 “야! 오늘 김 대리 심기가 어떠시냐?”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김 대리는 김씨 성의 오너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디테일을 잘 모르면서 오너가 대리급 디테일까지 직접 챙겨 모든 임직원을 평사원화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 회사는 위기다’라는 뜻이 함축돼 있는 거죠.

‘나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는 분은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주력회사 외에 계열사가 한두 개 생기자마자 “사장님! 사장님은 이제 회장님으로 불려야 마땅하십니다”라는 이야기를 아랫사람으로부터 들은 적은 없으신가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단것이 좋아진다거나, 누가 직언을 하면 머리는 용납이 되는데 이상하게 가슴으론 잘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요. 만일 그렇다면 대리로 강등돼 있을 가능성 90%입니다.

대리로 강등된 분들이 그 직급을 되찾는 법이 있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새로운 리더십은 사륜구동(四輪驅動) 리더십입니다. 어떤 일의 ‘무엇과 어디로’를 결정하는 ‘What’은 시야의 넓이와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므로 리더가 전문가입니다. 이 분야에서 리더의 신기는 누가 뭐래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반면 구체적인 실행방법을 나타내는 ‘How’는 리더가 따라갈 수 없습니다. 옛날 판 위에서 머리가 굳은 리더가 새로운 판 위에서 나고 자란 젊은 애들보다 새로운 판을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젊은 애들보다 디지털을 더 잘 알 수 있겠습니까? 젊은 애들보다 삶을 더 가볍고 즐거운 앵글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륜구동 리더십은 ‘What’은 리더가 앞에서 끌고(전륜구동), ‘How’는 실무자가 뒤에서 미는(후륜구동) 사륜구동 체제입니다. 마치 사륜구동 자동차처럼 ‘What’이 중요할 땐 전륜구동하고, ‘How’가 중요할 땐 후륜구동을 합니다. 힘을 모아야 할 땐 사륜구동입니다.

더 나아가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아랫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과감하게 아래 직급에게 ‘Project ownership’ 자체를 이양해 버리고 오너는 더 크고, 더 중요하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하는 리더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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