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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에 눈 먼 연개소문, 고구려 쇠락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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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지아씨는 “예전엔 겸손과 배려가 미덕이었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나’를 주장하고 ‘혼자 잘 살자’고 부추긴다. 너무나 가볍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제대로 된 한국형 판타지가 나왔다. 정지아(44)씨의 소설 『고구려 국선랑 을지소 1,2』(랜덤하우스)다. 배경은 수나라와 당나라의 도전을 물리치고도 내분으로 쇠락의 길을 걷던 고구려 영류왕(재위 618∼642년) 시대. 고구려 엘리트 무사를 키워내던 국선학당에 여덟 명의 소년·소녀가 모인다. 을지문덕 장군의 손자 소, 패망한 서돌궐 추장의 아들, 연개소문의 딸, 노예 출신과 태자까지 다양한 출신 성분을 가진 이들이 온갖 역경을 헤치며 고구려 최정예 무사집단 조의선인(早依仙人)이 되어간다. 연개소문과 을지문덕, 안시성주 양만춘 등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들이 빚어내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두 권으로 끝내긴 짧다 싶을 정도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상처입은 인간들의 이야기를 써내던 정지아의 문학적 탐구는 이 작품에도 살아있었다. 빨치산이었던 부모의 경험을 토대로 쓴 데뷔작 『빨치산의 딸』로도 유명한 작가를 만났다.

-진지하기로 이름난 작가가 판타지를 썼다.

“너무 무겁고 딱딱한 것만 써왔다. 내 머릿속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쓰고 싶었다.”

-기존의 판타지와는 다르다.

“장르문학에 일가견이 있는 후배가 내 소설은 무협도 판타지도 아니라고 했다. 주인공이 고난을 겪고 방황하다 마법의 세계로 접어든 뒤 보물을 얻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판타지 문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문법을 따를 필요성은 못 느꼈다.”

-연개소문을 수양이 덜 돼 피를 부르는 인물로 그렸는데.

“싸움도 싫어하고 욕심도 없는 주인공 을지소의 캐릭터가 먼저 떠올랐다. 주인공의 ‘욕심 없음’에 주목했다. 반대로 야망에 눈이 먼 연개소문을 대비한 거다.”

-왜 고구려가 쇠락하는 시기를 택했나.

“대천(大天)-소천(小天) 사상의 대비에 흥미를 느꼈다. 중국은 태양계 중심의 소천 사상에 빠졌고, 고구려는 태양계 너머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조화를 이루는 북두칠성으로 상징되는 대천 사상이 지배했다. 대천 사상에서 비롯된 자생공생(自生共生)을 지키던 고구려가 자국 중심주의를 내세우는 소천 사상에 젖어들며 오히려 쇠락했다는 것이다.”

-소설 내내 ‘자생공생’을 강조한 까닭은.

“요즘 세상이 너무 욕망을 강조하지 않나. 그러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데…. 마음대로 착해지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다. 모두가 자기중심적으로 살도록 부추김 받는 게 문제다. 대중문화에서 ‘복수’가 난무하는 것도 그렇다. 자기중심적일수록 분노도 강해진다. 넓게 보면 모든 게 포용되는데 말이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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