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보혁명과 아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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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혁명이란 뜻이 피비린내 나는 군사 쿠데타보다 더 실감나는 것이 오늘의 정보혁명이다.

10년이나 1년에 변하는 것이 아니라 1개월 또는 하루마다 다르게 변하는 곳, 그래서 인내가 미덕이 아니라 조급함이 미덕이며 경쟁력이 효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속도에서 나오는 곳, 그곳이 정보혁명의 현장이다. 이런 미국 정보혁명의 영웅들이 아시아의 정책 결정자들과 같이 토의하는 제1차 아시아. 태평양 정보기술 정상회의 (APITS)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난달에 열렸다.

아시아의 금융외환시장이 흔들려도 정보혁명이라는 새로운 문명,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정보기술. 정보산업. 정보정책. 정보사회의 교주 (敎主) 들은 미래의 아시아, 미래의 세계에 대한 확신에 미동도 없다. 인텔의 A 그로브, 오러클의 L 엘리슨, 넷스케이프의 J 박스데일, 시스코의 J 챔버스, 에이서의 스탠신, 세계 최대의 언론왕 L 머독, 그리고 회의조직위원장인 다이아몬드의 이종문 등 실리콘밸리의 영웅들이 주연으로 등장하고 조연으로 미국의 클린턴과 필리핀의 라모스 대통령, 일본. 호주.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한국. 대만. 중국의 산업. 기술장관들, 각국의 재계거물들과 학계인사들이 등장했다. 클린턴 대통령, 매거지너, 바셰프스키 무역대표, 그리고 그로브 회장 등이 펼친 미국측 그림은 첫째가 전자상업 (E - Commerce=E - C) 의 전세계적 제도화. 보편화며, 둘째는 아시아의 사회선진화 수요를 정보기술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50억달러의 기업간 전자상거래는 2000년까지 3천억달러에 이를 것이고 21세기 세계 경제성장의 엔진은 자동차도, 제철공장도 아니고 공장도, 사무실도, 직원도 없이 할 수 있는 E - C라는 메시지를 확신에 찬 소리로 전세계에 보내고 있다.

단 두명이 3년 전에 출발시킨 아마존이란 인터넷서점이 현재 연간 2백50만권의 책을 팔고 지난해보다 올해 10배 이상, 매달 10배씩 성장해 내년엔 올해보다 1백배 이상 팔 것이라는 전망은 전자상업의 혁명적 미래를 보여준다.

미국이 국가적 정력을 민간주도 시민의 힘에 의한 안전보호.세계화 등 5개원칙 아래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하고 아시아 각국에 전자상업 공동추진을 소리 높이 외치고 있다.

정보혁명 영웅들의 실천계획 속에는 아시아의 문제 해결사로서의 전략이 구체화돼 있다.

그로브 회장은 아시아의 3대 수요는 증가하는 인구의 교육.보건복지.경제며 교육.보건복지문제 해결은 바로 정보기술산업에 의한, 즉 원격교육.원격의료라는 정보혁명으로 가능하고 경제성장은 E - C로 가능하다는 '철학' 을 실연을 통해 웅변하고 있다.

세계 언론왕 머독의 아시아 정보혁명은 아주 실용적이다. 그의 목표는 중국.인도.동남아의 거대 인구지역이며 이곳에는 복잡한 PC나 NC보다 셀톱박스를 갖춘 TV와 쌍방향위성 (DBS) 이 정보혁명의 무기가 될 것으로 보았다.

가장 값싸고 이용이 편하고 무엇보다 아시아의 다양한 가치. 문화. 정치제도의 차이를 극복하며 정보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들의 말이 대통령이나 재벌들의 말보다 무게가 큰 까닭은 이들은 기존산업의 연장혁신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 = 새로운 산업 = 새로운 사회 = 새로운 문명.새로운 패러다임 = 새로운 역사의 '창조자' 이기 때문이다.

또 기술.생산.경영.비전.전략을 모두 본인들이 성공시킨 걸물들이기 때문이다.

정보혁명의 기술.경영.자본의 메카 실리콘밸리를 배경으로 열린 APITS에서 왜 실리콘밸리가 아시아에선 안되는가 하는 토의도 있었다.

이종문 회장은 실리콘밸리에서 3 OK, 즉 직장이동. 경쟁. 실패가 허용되기 때문이고 미래연구소의 R 요한센 소장은 '돈 (錢) 사람' 들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사람' 들이 모이기 때문이라 했다.

돈.국민총생산 (GNP).경제 제일주의에 탐닉해 그것을 선진화.근대화로 착각하는 한 우리는 한국의 실리콘밸리도, 정보혁명도 불가능하다.

국제통화기금 (IMF) 신탁통치를 받듯이 정보문명시대의 신탁통치를 받지 않으려면 진짜 '마음의 혁명' '아이디어의 혁명' 을 우리 스스로 지금 당장 해야 한다.

'아시아의 시대' 와 '정보혁명의 시대' 의 간격을 좁히지 못하면 아시아의 시대는 없다.

오히려 대만.인도.필리핀.말레이시아가 이 간격 좁히기에 우리보다 한발 앞서 성공하고 있다.

김진현 <서울시립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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