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김대중 정부 때까지만 해도 정치권의 음성 자금 조달 루트는 대개 대기업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2000년 총선을 앞두고 현대그룹에서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2004년 대법원에서 징역 5년 및 몰수·추징을 선고받은 게 대표적이다. 김영삼 정부 땐 홍인길 청와대 총무수석과 김우석 내무부 장관이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아 구속됐다. 대법원이 사실상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라고 결론 내린 1197억원 규모의 신한국당 96년 총선 자금도 출처는 대기업이란 소문이 돌았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의 800억원대 ‘차떼기’ 자금도 역시 대기업 돈이다. 대기업 비자금은 보안이 철저하기 때문에 안전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또 경제적 파장이 크기 때문에 검찰이 함부로 건드리기 어렵다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선 대기업을 모금원으로 활용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노무현 정부가 ▶정경 유착 근절을 정치 개혁의 대표 상품으로 내세운 데다 ▶한나라당의 ‘차떼기’를 정치 공세에 적극 활용했 기 때문이다.
친노 인사들은 박·강 회장에게 돈을 받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봤다고 한다. 두 사람이 워낙 오래전부터 노 전 대통령을 도왔기 때문에 새삼스레 대가성이 문제될 게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친노 인사들과 인간적 거리도 가까웠다.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이 7일 “현직 대통령의 서슬 퍼런 위세에 기가 질려 발길을 끊고 있을 때 그분만이 봉하마을을 지켰다”며 강금원 회장의 ‘의리’를 칭송한 것은 친노 그룹의 인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사법적 잣대로 보면 엄연히 그 같은 돈 거래가 정치자금법 위반에 해당된다는 점을 무시했던 게 친노 그룹에 치명적 결과를 가져왔다. 은밀한 돈 거래가 박연차·강금원 두 사람에게 몰리다 보니 이 둘에 집중된 검찰 수사가 친노 인사들을 도미노처럼 무너뜨리는 후유증을 낳고 있는 것이다. 숭실대 강원택 교수는 “이번 사건을 과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의 개인 축재처럼 보긴 어렵다”면서도 “정치 개혁을 부르짖던 친노 진영이 스스로 실정법을 어겼다는 점은 국민적 공분을 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김정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