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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리비아 관계 복원] "핵 대신 경제"…카다피 실리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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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담 후세인이 미국-리비아의 외교관계 복원을 가져왔다'. 두 손을 맞잡은 워싱턴과 트리폴리를 바라보는 국제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3월 이라크를 공격할 때 한가지 숨겨 놓은 목표가 있었다. 후세인을 제거해 리비아.이란.북한 등 불량국가들의 핵개발 포기를 압박하자는 것이었다. 미 언론은 백악관의 이 같은 전략을 '바그다드 효과'로 불렀다. 리비아는 바그다드 효과의 딱 떨어지는 성공 사례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원수는 핵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가 자신의 정권을 방어하는 수단이 아니라 정권 교체를 유도하는 악재라는 것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카다피는 지난해 12월 핵개발 포기를 선언하고 미국과의 외교관계 개선과 경제제재 해제라는 실리를 선택했다. 국제사회는 북한도 리비아의 뒤를 이을지 주목하고 있다.

◇20년 경제봉쇄=리비아는 핵포기 선언과 함께 국제사회에 화려하게 복귀했고 '경제의 봄'을 맞았다. 20년에 걸친 봉쇄로 리비아 경제는 엉망진창이었다. 세계 8대 산유국이었지만 석유 수출길이 막힌 데다 채굴시설의 낙후로 과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하루 140만배럴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더구나 수출의 95%를 석유가 차지했으므로 '오일 머니'는 금세 바닥났다. 경제난으로 최고 엘리트들인 리비아 국립대 학생들조차 유리창도 없는 교실에서 수업해야 했다. 카다피가 아들의 설득을 받아들인 또 다른 이유는 이 같은 경제 피폐다. 카다피는 테러범들을 서방 국가에 인도하는 등 유화적인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9월 유엔은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했다. 그 직후 4월까지 100개가 넘는 각국 경제사절단이 리비아를 방문했다.

리비아는 16일 외국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에 대규모 민.관 경제사절단을 파견, 한국 기업의 리비아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적극 나섰다. 리비아 해외투자유치청 라잡 I M 쉬글라부 청장은 "리비아는 전력.통신.석유화학 분야에 450억달러(약 54조원)의 투자를 유치할 것"이라며 "한국 기업의 적극 투자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리비아의 분야별 신규 장기 해외투자 유치 계획은 ▶서부 가스전 개발사업(45억달러)▶석유화학(30억달러)▶발전소와 담수화 프로젝트(120억달러)▶정보통신(103억달러)▶철도(100억달러)▶대수로 후속 사업(50억달러) 등이다. 적극적인 투자 유치를 위해 카다피 원수가 15년 만에 유럽 순방에 나서 경제 지원과 협력을 호소하기도 했다.

◇적극적인 석유회사들=리비아에 가장 적극적인 투자자는 다국적 석유회사들이다. 리비아의 원유 매장량은 알려진 것보다 세배 이상 많은 1000억배럴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적 정유업체인 영국의 로열 더치셸은 리비아와 계약 성사를 눈앞에 두고 있고 텍사코.엑손 등 미국 회사들도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달 초엔 리비아 석유의 대미(對美)수출이 재개됐다. 미국은 4일 윌리엄 래시 상무부 차관보를 리비아에 파견해 양국 간 통상 증진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리비아 에너지 장관은 이 자리에서 "현재 170만배럴에 불과한 석유 생산능력을 7~10년 후 300만배럴로 늘리기 위해 300억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미국은 리비아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줄 계획이다. 리비아가 세계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다. 유럽연합(EU) 역시 리비아를 유럽과 지중해 연안 국가 간 협력체인 '바르셀로나 프로세스'의 파트너 국가로 받아들이기를 희망하고 있다. 영국 BBC 방송은 리비아가 원유는 물론 사하라 사막과 지중해 등 천혜의 관광자원이라는 무한한 잠재력을 보유한 만큼 빠르게 자본주의 국가로 전환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원기.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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