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진 공포 … “12년 전처럼 몇 주 계속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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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새벽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95㎞ 떨어진 라퀼라가 폐허로 변했다. 대형 폭탄이 떨어진 듯 건물 대부분이 붕괴됐다. [라퀼라 AP=연합뉴스]

755년 된 ‘중세의 보석’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 북동쪽으로 95㎞ 떨어진 곳에 위치한 중세 도시 라퀼라가 6일 새벽(현지시간) 도시를 강타한 지진에 폐허가 됐다고 AP·AFP 등 외신이 보도했다. 인구 7만 명이 평화롭게 살던 이 작은 산간 도시는 이탈리아 최초의 계획도시로 역사적·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중세의 보물이었다.

◆도시 전체가 ‘문화재’=라퀼라는 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양 건축 박물관이었다. 그러나 이곳을 덮친 지진으로 유서 깊은 요새와 성·교회·성인의 묘지 등은 대부분 손상됐다. 라퀼라의 역사는 75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254년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인 콘라트 4세의 명령으로 건설된 중세 이탈리아 첫 계획도시다.

라퀼라의 주요 유적들은 수세기에 걸쳐 여러 차례 지진을 겪었음에도 거의 손상되지 않은 채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6일 도시를 강타한 지진으로 산타마리아 디 콜레마지오 성당을 포함한 대부분의 유적이 큰 피해를 봤다. 이 성당은 1294년 교황 첼레스티노 5세의 대관식이 거행됐던 장소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특징을 함께 갖추고 있으며 특유의 핑크 빛과 화려한 흰색 외관으로 매년 수천 명의 순례자를 끌어 모은 명소다. 르네상스 시대에 만들어진 산 베르나디노 교회의 종탑도 피해를 봤다.

지진으로 무너진 라퀼라 인근 카스텔누오보의 성당. [카스텔누오보 AP=연합뉴스]

◆여진 피해도 우려=프랑스 일간 르 피가로는 “5일 저녁부터 이탈리아에 30여 차례 지진이 발생했다”며 “라퀼라 지진은 몇 주일간 지속적인 여진을 몰고 왔던 1997년의 이탈리아 지진과 성격이 유사하다”고 6일 보도했다. 또 “이번 지진이 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로 일어났으며, 두 판 사이에 있는 작은 판에 소속된 이탈리아는 샌드위치가 돼 피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7일 오전까지 207명이 숨지고, 1000명의 부상자 중 100명 이상이 중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라퀼라에서만 3만여 채의 건물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피해 규모는 구조 작업이 진행되면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지진의 규모는 6.3이었다. 이날 새벽에 발생한 지진으로 잠결에 집과 가족을 잃게 된 이재민들은 도시 곳곳에 마련된 임시 텐트촌에 모여 소방대원 및 경찰들이 무너진 건물 속에서 생존자를 찾는 모습을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고 외신이 전했다.

가루가 되다시피한 건물 주변에는 실종된 가족이나 친구의 이름을 부르짖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한 여성은 “내 오빠가 저기 사는데 실종됐어요. 남편이 아침부터 그곳에서 오빠를 찾고, 찾고 또 찾고 있어요”라며 울먹였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미국·러시아·프랑스·독일·포르투갈·슬로베니아·모로코 등 각국 정상들은 위로 전문을 보내 슬픔에 빠진 이탈리아 국민들을 위로하고 구조 등을 지원키로 했다.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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