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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대 황소, 60년대 TV, 90년대 아파트 … 요즘은 상품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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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일원어치 사시면 황소 한 마리!’

1936년 4월 화신백화점 광고에 등장한 문구다. 64년 12월 신세계백화점 크리스마스 세일 때는 ‘7대의 19인치 고급 텔레비 세트는 누구에게’라는 홍보문구를 내세웠다. 중산층 이상이 애용하는 백화점이지만 못살던 시절에는 설탕과 버터, 세숫대야 같은 생필품들이 사은품으로 나왔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고성장을 하던 시대엔 경품도 모피·다이아몬드 반지 등으로 덩치가 커진다. 요즘엔 ‘실용’이 키워드다. 친환경 제품과 백화점 상품권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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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한국상업사박물관이 분석한 시대별 백화점 경품과 사은품 변천사를 들여다 봤다. 이 박물관 배봉균 과장은 “백화점들은 시대별로 소비자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거나 큰 반향을 일으킬 만한 상품을 골라 사은품이나 경품으로 나눠줬다”며 “사은품과 경품의 흐름을 보면 시대 변화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생필품에서 고가품으로=33년 인천에 있는 비단가게인 태풍상회는 세숫비누, 치마와 저고리, 달력 등을 사은품으로 줬다. 36년 화신백화점의 경품 황소는 당시 재산 목록 1호였다. 한 마리 키우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을 정도로 농가의 주 소득원이었다. 60년대 사은행사를 보면 경품은 국민들이 “나도 한번 가져봤으면…” 하고 꿈꾸던 TV·냉장고·선풍기 같이 당시로선 귀한 상품이 주였다. 사은품으로는 가정 생활에 꼭 필요하면서 구하기 힘들었던 설탕·버터·비누 같은 생필품이 애용됐다. 500원 이상만 사면 사은품을 받을 수 있었다. 70년대엔 사은품 종류도 다양해졌다. 복주머니·이쑤시개는 물론 크레파스·세숫대야·볼펜이 고루 등장했다. 명절에는 토정비결을 봐주거나 컬러 사진을 찍어주는 사은 행사가 인기를 모았다. 물가가 오른 만큼 1000원 이상을 사야 사은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80년대에는 1만원 이상 산 사람에게 패션 사은품을 증정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여유가 생겨 바캉스 바람이 불면서 바캉스백·비치백이 큰 인기를 끌었다. 90년대엔 고가 경품이 다수 등장했다. 모피·다이아몬드 반지·금열쇠 등을 추첨을 통해 증정했다. 해외여행 바람을 등에 업고 여행용 가방이 사은품으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등장한 백화점 상품권은 사은행사 때 빠지지 않는 단골 사은품. 여가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대상을 반영해 스키캠프 이용권, 호텔 이용권도 인기를 모았다. 문화생활에 눈뜬 주부들에게 H.O.T.컴백 스페셜 티켓과 나훈아 디너쇼 티켓 사은품이 인기를 끈 것도 이 무렵이었다.

◆사은품의 경제학=9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공개 경품 한도를 없애면서 98년 ‘로열층 아파트’같이 통 큰 경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입차 마케팅이 치열해지자 외제차가 경품으로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몇 명만 당첨의 행운을 누릴 수 있었던 고액 경품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대형 행사 때 외에는 거의 사라졌다. 대신 고객들에게 고루 혜택을 나눠 줄 수 있는 사은품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얼마 이상을 사면 덤을 주는 사은품이 경품보다 마케팅 효과가 훨씬 좋은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 홍정표 마케팅팀장은 “고액 경품은 고객들이 ‘설마 내가 당첨되겠어’라고 생각하는 반면 사은품은 ‘이왕 살거 몇 개 더 사서 사은품을 받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은품으로 낙점되려면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은품 인기는 모객 효과와 직결돼서다. 백화점 마케팅 담당자들은 세일 석 달 전부터 사은품을 정하기 위해 수십 차례 회의를 연다. 주부 모니터들에게 제일 받고 싶은 물건이 무엇인지 설문도 돌린다. 사은품을 배포하는 매대는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백화점들은 세일 기간 매출 목표의 0.3% 정도를 사은품에 쓴다. 좀 더 저렴한 상품을 준비해 더 많이 나눠줄지, 아니면 다소 고가로 책정해 혜택받는 소비자 수를 줄일지는 그때그때 전략적으로 결정한다.

최근 추세는 디자인을 살린 친환경용품이다. 신세계백화점은 배우 이보영이 디자인한 친환경 에코백의 물량을 2월 1만2000개에서 이달 세일 땐 2만6000개로 늘렸다. 현대백화점도 디자이너가 만든 에코백을 사은품으로 내놨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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