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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로켓 발사는 아소 정권 회생 돕는 선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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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호 14면

박철희 교수(왼쪽)와 야마구치 지로 교수. 최정동 기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으로 국제사회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의 안보 지형도 꿈틀댄다. 동북아 안보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인 일본은 어떻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을까. 일본 정치학회 회장으로, 일본의 정치 개혁을 꾸준히 주장해 온 야마구치 지로(51·정치학) 홋카이도대 법과대학 교수는 북한 미사일 문제가 일본의 정치 개혁에도 방해물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을 방문한 야마구치 교수를 지난주 박철희(46·일본 정치학)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만났다.
박철희 교수=북한 미사일 위협을 어떻게 보나.

야마구치 지로 일본 정치학회장

야마구치 지로 교수=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은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솔직히 일본의 자민당 보수 정권은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북핵 문제를 이용하고 있다. 지지율이 바닥인 아소 총리 입장에선 북한의 미사일 위협은 회생을 위한 선물이나 마찬가지다. 위기감을 부추기면 정권의 지지율은 오른다. 결국 북한의 미사일 위협은 일본 정치 변화를 가로막는 방해물 역할을 하고 있다.

박=그렇다면 민주당은 자민당과 북한에 대한 접근법이 다른가.

야마구치=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그리고 북핵 문제에 대해 새로운 발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북한의 도발로 일본 내에서 군비 증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이는데.

야마구치=자민당을 중심으로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을 준비하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일본의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최근 『정권교대론』이라는 책을 썼다. 일본에서 정권교체가 필요한 이유는 뭔가.

야마구치=일본 정치는 전후 50년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2006년 이후 해마다 총리가 교체됐다. 자민당의 성공은 1980년대까지다. 90년대 들어 냉전은 사라졌다. 경제의 거품이 꺼지고 세계화가 시작됐지만 일본 정치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90년대 정치 개혁으로 선거 제도가 바뀌면서 자민당은 살아남는 데 급급했고, 좋은 정책을 실현하는 것보다 정권 유지를 최대 목적으로 삼았다. 그게 불행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구조개혁 등 혁신안을 만들어냈지만 실패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도 겹치면서 일본 사회가 혼돈에 빠졌다. 정치·정책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박=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이 불거졌다.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에 어떤 영향이 있는가.

야마구치=민주당에 대단한 마이너스다. 오자와 대표가 자리를 내놓지 않으면 민주당이 정권을 잡긴 힘들다. 하지만 오자와 스캔들이 나온 뒤 여론조사를 보면 정권교체를 바라는 기대치는 내려가지 않았다.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간 것도 아니다. 오자와 대표가 사임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면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박=동북아시아의 안보와 관련, 민주당과 자민당의 차이는 뭔가.

야마구치=대미관계나 미·일 안보체제와 관련된 정책에선 차이가 없다. 하지만 아시아와의 관계는 명확히 다르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 일본은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민족주의를 부추겼고, 아시아 국가와 관계를 악화시켰다. 그 후 아베 신조 총리가 관계 회복을 시도는 했지만 그 역시 기본적으로 민족주의가 강한 사람이다.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자민당의 발상으로는 아시아 국가들과 대담한 협력 관계를 수립하고 새로운 지역협력을 해 나간다는 게 불가능하다. 물론 민주당 인사 중에도 민족주의자가 다소 있지만, 대부분은 온건한 역사관을 갖고 있다. 과거를 반성한 다음에 아시아 국가와 관계를 맺자는 생각을 한다.

박=미국의 정권이 바뀌었다. 미·일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나.

야마구치=그다지 변한 것은 없다. 아소 총리가 외국의 국가수반으로는 처음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났다고 하지만 알맹이는 없다. 일본 정부는 주로 공화당과 파이프 라인을 유지하고 있었고, 대선 과정에서도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승리를 믿고 있었다. 오바마 정권과의 공감대, 함께 글로벌 정책을 실현해 나가려는 준비는 안 돼 있다고 봐야 한다. 일본은 미국의 새 정부에 대해 수동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그게 현실이다.

박=그러면 일본의 민주당은 미 민주당과 깊이 연계돼 있는가.

야마구치=미국의 민주당이 대선 때 내건 슬로건은 ‘변화’였고, 일본의 민주당도 같은 슬로건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민주당 내에는 미국의 새 행정부와 파이프를 가진 인물이 별로 없다. 지금부터 해 나가야 할 과제다.

박=오자와 대표는 최근 ‘(미국 해군) 제7함대만으로도 극동에서의 미군 주둔은 충분하다’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야마구치=당연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한다. 오자와는 미·일 안보체제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냉전 후 미군 기지가 그렇게 많이 일본 내에 필요한가 하는 문제의식은 갖고 있다. 미군을 줄여 나가면서 안전을 보장하려 할 것이다. 미군을 쫓아내고 자위대를 강화시키자는 식의 매파 관점은 아니다.

박=기지를 줄이는 게 가능하다고 보나.

야마구치=가능할 것 같다. 앞으로 국가 간 전쟁은 없을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 소말리아 해적 소탕 같은 소규모 지역분쟁에 대응하는 정도라면 많은 주둔군은 필요 없지 않을까 한다.

박=‘제주도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한 오자와의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다.

야마구치=정말로 일본이 돈으로 제주도를 매수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쓰시마섬에 한국 자본이 많이 들어와 있다는 우익 인사의 발언에, ‘그렇다면 우리도 제주도를 사면 되지 않느냐’하고 받아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으로 한국의 영토를 산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고, 오자와가 그런 일을 진심으로 이야기할 사람은 아니다.

박=오자와 대표가 물러날 경우 대안은.

야마구치=오카다 가즈야가 가장 유력하다. 2004년 참의원 선거부터 2005년 중의원 선
거까지 민주당 대표를 맡았다. 성실한 사람으로, 당 안팎의 신뢰를 받고 있다. 비교적 젊기 때문에 ‘변화’란 슬로건에도 딱 맞다.

박=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크다고 했는데, 희망사항인가. 현실을 반영한 말인가.

야마구치=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정치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는데, 이 정도까지 변화를 바란 적은 없었다. 민심이 자민당을 떠나고 있다. 심각할 정도다. 지금까지도 스캔들이 많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무당파 국민도 가세하고 있고, 기존의 자민당 지지층도 모두 자민당을 원망한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 개혁의 와중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닌가 한다.

박=일본 정치를 계속 분석해 오셨는데, 한국 정당 정치는 어떻게 보나.

야마구치=일본이 한국 정치에서 배워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시민의 참가다. 한국인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기면 항의를 하거나 시위에 나선다. 시민의 정치적 에너지가 크다. 민주화를 이뤄낸 것도 시민의 위대한 성과이다. 그 유산들이 계승돼 온 것이다. 일본 정치 문화와 큰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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