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니체는 민주주의를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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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김진석 지음, 개마고원
304쪽, 1만 6000원

누가 믿으려 할까? 1차 세계대전에 출정했던 많은 독일 병사들의 배낭 속에는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들어있었다는 것을…. 애인들이 보내주는 책 선물로도 그 책이 유행이었다는데, 100년 뒤에 출현한 철학서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는 좀 외로워 보인다. 경박해진 이 시대 누가 이 머리 아픈 책에 관심을 가질까?

게다가 인하대 철학과 교수 김진석의 이 책은 니체 입문서가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사회의 니체 해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메타비평 성격도 가지고 있다. 즉 ‘철학의 철학’이고, 니체는 왜 그렇게 민주주의를 “대중들의 천박한 취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는지를 따져 들고 있다.

초인, 즉 위대한 인간을 이마에 달고 다니던 니체가 볼 때 19세기 중반 모습을 갖춘 민주주의란 너절했다. 한마디로 ‘난쟁이들을 위한 이념’에 불과했다. 민주주의야말로 평준화의 가치 속에서 인간이 점차 왜소해지고 타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선악의 저편』에서 니체는 도도하게 주장했다. 민주주의가 최선이라고 믿는 우리에게 얼떨떨한 비판이다.

하긴 그가 ‘막가파 철학자’이니까’하고 그 동안 우리들은 대충 넘어갔다. 사실 니체는 서양의 지적 전통 전체를 허물려고 했고, 그 원인제공자인 신을 겨냥해 표적 살해했고, 노예근성을 부추겨온 기독교 윤리를 저주했으며, 플라톤 철학도 메다 꽂지 않았던가. 그런 공자 왈 맹자 왈은 현실정치의 민주주의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담론이라고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한다.

그러는 사이에 사태가 벌어졌다. 히틀러가 니체 철학을 도용해 파시즘으로 써먹은 것이다. 국내 철학자들도 민주주의 비판 대목은 ‘지뢰밭’이라고 여겨 슬금슬금 피해왔다. 이 책은 니체의 민주주의 비판이라는 핫 코너를 외면하지 말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완전하기는커녕 불완전함을 암시한다. 잊을 만하면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폭력이 발생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때문에 니체는 민주주의의 불완전성에 대한 ‘위험한 증인’이 맞다. 그의 반민주주의 증언은 만민의 평등을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좌파, 민주주의를 시장과 결합시키려는 우파에게도 음미해 볼 만하다. 한가지,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는 철학서 중에서 그래도 문장 스타일의 개념이 살아있다. 그럼에도 읽어내기 만만치 않다. 그의 한계일까, ‘우리말로 철학하기’의 한계일까?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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