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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층 대출지원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안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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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가계의 부채 규모는 갈수록 늘고 있는 반면 최근 기업들의 구조조정으로 노동시장이 불안해지면서 가계소득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많은 가정이 임금소득으로 가계 부채를 상환하고 있어 실직이나 임금 삭감은 곧 가계 대출의 부실로 이어진다. 실업률이 증가하고 물가 상승 압력이 다시 가계 건전성을 위협하는 악순환을 빨리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는 중산층이 무너질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될 것이다.

정부가 실효성 있는 정책을 통해 가계 부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본다. 얼마 전 정부는 무담보·무보증 소액창업자금 대출 사업인 ‘희망키움뱅크(마이크로크레디트)’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마이크로크레디트(MC : Micro Credit)는 신용 자격 미달로 일반 은행에서는 대출받을 수 없는 빈곤층에 적은 돈을 빌려줘 자립을 지원하는 것으로, 저소득층이나 금융서비스 소외 계층을 위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크로파이낸스(MF : Micro Finance)의 한 영역이다. 1976년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 설립자인 유누스 총재로부터 시작된 MF는 이후 다국적 금융그룹들이 앞다투어 이 시장에 뛰어들었고, 유엔 역시 2005년을 ‘MF의 해’로 선포할 만큼 적극적이다.

지금 전 세계 MF 주체들 간에는 MF나 MC를 영리 목적의 비즈니스로 키울 것인가, 혹은 비영리 목적의 기금으로 운영할 것인가를 놓고 뜨거운 찬반 논쟁이 진행 중이다. 우리에게 이런 논쟁은 당장 필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핵심은 이렇게 형성된 자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또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MF는 자금의 공적 성격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수많은 금융소외 계층에게 폭넓게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말 신용등급 7등급 이하자 수는 813만 명으로 2007년 말 대비 50만 명 이상 급증했다. 우리는 이들이 제도권의 높은 문턱 앞에서 좌절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은 상대적 고금리라 하더라도 시장 경쟁력을 담보한 건전한 MF 기관을 만들어야 할 때다. 연 50% 이상의 초고금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문 밖의 사람들’에게 연 25%의 ‘상대적 고금리’도 단비와 같은 것이며, 불법 사채로부터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 사각지대에 놓여져 있는 소외 계층들을 상대로 ‘정확한 원인의 진단과 실질적인 대안’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전문화된 책임 기관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정부 차원의 ‘신용 회복 및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본부’를 신설해 현재 제각각 운영되고 있는 지원제도를 통합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 기구에서는 각 개인의 상황을 분석하고, 신용 위험에 빠진 원인을 제거하고 난 후 해결 대안이 제공돼야 한다. 개인의 상황에 따라 처방이 달라야 하며, 신용 위험에 빠진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채 지원해 주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지금 생존의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금융 소외 계층에게 필요한 것은 고기(다양한 지원과 혜택)와 고기 잡는 법(개인 재무관리를 통한 자활훈련) 모두다. 적어도 한참 동안 우리는 아주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함께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문진수 포도재무설계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