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street fashion] 스타일 기획, 그들은 어떻게 입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8면

개성 강한 일본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몰린다는 패션 동네, 하라주쿠. 이곳에서 스트리트 패션을 취재하며 착용한 옷의 브랜드를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후루기(중고)’였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적응하기 위해 입은 가죽 재킷은 물론 가방, 구두, 목걸이, 반지, 모자 등 종류도 다양했다. 하늘하늘한 시폰 원피스와 폭넓은 벨트를 중고 옷가게에서 각각 구입해 조합했다는 설명도 있었다. “오늘의 의상 컨셉트”를 묻는 질문에 그들은 공통적으로 “평소 즐겨 가던 중고 옷가게에 가서 원하는 아이템을 샀고 그것을 적절하게 매치했다”고 답했다. “빈티지 스타일”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없었다.

흔히 ‘빈티지’와 ‘중고’를 헷갈린다. 빈티지 제품은 적어도 50년 전의 스타일을 현대에서 재현한 것이나 또는 그 시대의 것을 말한다. 중고는 말 그대로 누군가 사용했던 것 또는 오래된 것을 지칭한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중고품을 좋아하는 이유가 ‘빈티지 스타일’의 유행 때문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성향은 제품 하나를 사면 쉽게 버리지 않고 오랫동안 쓰는 일본의 생활문화가 젊은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현재 일본에서는 패스트 패션(유행에 따라 디자인을 빨리 바꾸어 내놓는 형태)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골목 곳곳에 중고 전문점이 들어서 있는 게 일본이다.

하라주쿠 거리에서 목격한 어느 중고 옷집 쇼윈도에는 ‘15주년 기념 세일’이라고 씌어 있었다. 15년 전부터 이미 일본의 젊은이들은 누군가 입었던 중고 옷을 사서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것에 익숙하다는 증거다. 하라주쿠에서 이어지는 길에 위치한 쇼핑센터 오모테산도힐스 뒤편은 골목 입구의 ‘시카고(CHICAGO)’를 비롯해 중고 숍들이 모인 거리로 유명하다. 셔츠 한 장 399엔(5600원 정도), 꽃무늬 시폰 원피스 1020엔(1만4300원 정도). 유명 디자이너 또는 명품 브랜드의 중고품을 파는 숍도 있다. 일본 쇼핑 매니어들이 추천하는 중고의류 전문점 ‘한지로’는 일본 전국의 주요 도시에 18개의 매장을 갖고 있으며 사이트(www.hanjiro.co.jp)를 통해 웹 숍도 운영하고 있다. 해석해 보면 일본의 패션문화는 브랜드에 맹목적이지 않고, 일상의 생활문화와 유행이 공존하는 ‘다양성’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9 봄 일본 거리 패션 트렌드 3

형광 원색

시부야에 위치한 ‘109(이치마루큐ㆍ우리나라의 동대문 쇼핑타운 같은 곳)’ 7층 건물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기억에 남는 컬러는 두 그룹으로 나뉜다. 블랙&화이트, 그리고 핑크. 귀여운 이미지를 좋아하는 일본의 젊은 여성들은 유난히 핑크에 열광한다. 특히 올봄 거리에는 핑크는 물론이고 노랑·녹색·보라를 중심으로 한 형광빛 컬러 제품들이 넘쳐 나고 있다.

꽃무늬 원피스

“봄 느낌을 내고 싶어서 입었습니다.” 벚꽃만큼이나 잘고 은은한 꽃무늬 시폰 원피스를 입은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띈다. 하지만 이것을 소화하는 방법은 가지각색. 검정 가죽 재킷을 매치해 세련된 느낌을 냈는가 하면, 카디건이나 폭이 넓은 와이드 밴드를 이용해 여성스러움을 표현했다.

록 스타일

대개 ‘니폰 스타일’이라 불리는 차림은 하라주쿠와 시부야를 중심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누린 ‘록 스타일’ 패션을 말한다. 몸에 딱 붙는 스키니 진, 가죽 소재, 체인·목걸이·반지를 비롯한 각종 금속 장신구를 많이 사용하고 여러 가지 옷을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이 특징이다. 

도쿄=서정민 기자

사진=이은석 프리랜서



“귀여운 디자인이 기본 컨셉트
젊은 여성 입소문 덕 많이 봐요”

일본 여성 캐주얼 브랜드 ‘잉그’ 대표 다카시 무카이

-브랜드의 컨셉트

"유행에 민감한 젊은 층의 욕구에 맞춰 신선한 아이템을 빠르게 공급하고 있다. 잉그가 론칭될 당시, 일본 내에는 ‘패스트 패션’의 개념을 가진 브랜드가 드물었다. 우리는 론칭 때부터 감각 있는 디자인과 완성도 높은 질,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대(한국과 비교하면 에고이스트보다 조금 낮은 정도. 일본에서는 유니클로의 세 배 가격대)를 기본으로 신상품의 회전율을 높여 왔다.”

-디자인의 특징

"잉그는 ‘귀여운 디자인’이 기본 컨셉트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핑크를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프릴ㆍ리본ㆍ레이스ㆍ퍼프소매 등의 디테일을 많이 갖고 있다.”

-도쿄 진출 전략

"현재 도쿄 시내에 15개의 잉그 매장이 개장해있다. 성공적인 도쿄 진입의 관건은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시부야의 ‘109’ 백화점에 매장을 열고 그곳에서 인기를 얻는 일이었다. 일본에서도 또래들끼리의 ‘입소문’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낸다. 현재는 신주쿠의 ‘알타’ 쇼핑센터에도 매장이 들어서 있다.”

-일본 젊은이들의 소비성향

"요즘 젊은이들은 유행에 민감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번 구매한 물건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고 오래 보관하는 성향도 크다. 그 때문에 디자인이 좋은 우수한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는 젊은이가 늘고 있다. 잉그의 제작·판매 전략은 젊은이들의 이런 소비 성향에 맞춰져 있다.”

-‘잉그’라는 브랜드 이름

"앞에서 읽어도 뒤에서 읽어도 ING. 고객이나 우리 모두 언제나 활기차게 성장해 나가는 ‘현재진행형’이길 바라는 의미다.”

-지난해 11월 개장한 패션 브랜드 ‘H&M’의 영향

없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브랜드를 중시하진 않지만 일단 만족하면 충성도 또한 높다.

잉그는 일본 내 자체 제작 20%, 한국과 중국 기업을 통한 OEM 80%의 제작 시스템을 갖고 있다. 한국의 파트너는 ‘K&튤립’사로 일본의 유수 브랜드에 OEM/ODM 수출로 연간 6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기업. 국내에서 섹시 영 캐주얼 브랜드 ‘코카롤리’를 전개하고 있는 ㈜코카롤리의 모회사이기도 하다. 11년 전 잉그를 처음 시작하면서 알게 된 ㈜코카롤리 전경숙 대표와는 막역한 친구 사이가 됐을 만큼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무카이 다카시 대표는 오랜 시간 유지돼 온 양사의 관계 비결은 “첫째가 신용”이라고 답했다. “패스트 패션이 추구하는 빠른 회전율을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덧붙여 “새로운 디자인 개발을 위해서는 창조적인 파트너가 필요하다. K&튤립의 계열사인 코카롤리의 디자인이 잉그의 신상품에 많이 반영되고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서정민 기자



잉그 INGNI

섹시하고 귀여운 디자인을 선호하는 20~28세 타깃의 중저가 여성 캐주얼 브랜드. 오사카를 기반으로 1998년에 론칭해 현재 전국에 120개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연간 매출은 2008년 기준 3600억원. 현재 동일한 타깃의 캐주얼 시장에서 매출 순위 3위에 들 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