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환자] 구두약 손으로 양말 내밀던 청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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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성 원장은 예전에 쓰다 남은 연고를 아깝다고 환부에 발랐다가 상태를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영회 기자

50대의 남자 환자가 오른쪽 볼과 귀 목에 걸쳐 넓게 붉은색의 가려움증을 동반한 피부 질환으로 내원했다. 수개월 전에 손톱만한 부스럼이 생겨 집에 있는 연고와 약국에서 구입한 연고를 번갈아 발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좋아지다가 바로 다시 심해져 연고를 계속 바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는 새 질환 부위는 계속 커지고 연고의 치료 효과가 없어 결국 피부과를 찾게 된 것이다.

검사(KOH도말검사)를 해보니 다량의 진균 균사가 현미경을 통하여 관찰됐다. 피부진균증 즉 체부백선이었다. 쉽게 얘기해 무좀균이 얼굴 부위에 뿌리를 내려 퍼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진균이 수없이 퍼져 있으며 무수히 진균과 접촉하고 있지만 균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적당하지 않으면 진균증이 잘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습기와 온도가 맞으면 진균은 번식해 피부 질환을 일으킨다. 우리 몸에서 제일 진균이 번식 잘 하는 부위는 오랜시간 환기가 안 되고 땀도 잘 증발하지 못하는 발이다. 그래서 진균증 중 제일 많은 질환은 족부 백선(발무좀)이다.

그 환자는 일반 피부염에 흔히 쓰는 스테로이드제 연고를 발랐던 것이다. 처음에는 가려움증도 없어지고 병변도 좋아지나 연고를 바를수록 진균은 더욱 증식해 악화된 것이다. 처음에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환자는 계속 그 연고를 바르게 되고 결국 심하게 퍼져 고생을 하게 된다. 그 환자는 결국 치료가 되었지만 안 해도 될 고생을 더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정에는 예전에 피부질환 때문에 바르다 남은 연고가 보통 몇 개씩은 있다. 피부병변이 생기면 우선 이걸 발라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화를 부르는 일이다.

의약분업 이후 많이 감소하였지만 정확한 진단 없이 약국에서 연고를 구입해 바르다가 더욱 피부질환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정확한 용도를 잘 모르는 연고가 집안에 남아 있으면 아끼지 말고 버리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 치약도 모양이 연고와 비슷하기 때문에 치약을 피부병 부위에 바르는 웃지 못 할 일도 예전엔 있었다.

내원하는 환자들 성향은 각양각색이다. 가렵다고 화내는 분, 생각날 때만 병원에 오면서 안 낫는다고 하는 분, 빨리 안 낫는다고 불평하는 분 등.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정신’이 병원에서 예외일 순 없다. 그래도 대부분 의사를 믿고 치료를 맡긴다. 의사와의 신뢰 관계가 형성되야 치료약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성향만큼이나 직업도 다양하다.

15년 전쯤에 천안역 앞 광장을 지나는데 구두를 닦던 청년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본래 얼굴 기억을 잘 못하는 나는 자세히 그를 들여다 봤다. 그 즈음 나한테 진료를 받던 환자였다. 허름한 옷차림인데도 항상 밝은 얼굴을 하던 청년라서 기억하고 있었다. 구두를 닦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못 본체 할만도 한데 인사를 하는 그를 보니 무척 반가웠다.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그 청년이 병원에 찾아 와 “원장님, 이거…” 하면서 조그만 포장을 멋쩍은 듯이 내놨다. 양말 한 켤레였다. 가슴이 찡해 한동안 환자를 볼 수 없었다. 그 날은 하루종일 들뜬 상태로 진료했던 기억이 난다.

구두약 묻은 손으로 양말 한 켤레를 건네던 그 청년. 밝고 자신감 있는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지금쯤 가정을 꾸미고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장인성 성모피부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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