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불교 주도권 장악, 큰 꿈 드러내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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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와 대만의 타이베이(臺北)에서 ‘제2차 세계불교포럼’이 열렸다. 50여 개국에서 1200여 명의 불교 대표단과 학자들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 포럼’이다. 2006년 처음 열린 이 포럼은 지난해 두 번째 대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해 3년 만에 개최됐다. 사회주의 중국과 불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얼굴의 ‘묘한 동거’였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제2회 세계불교포럼’ 개막식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맨 왼쪽). 맨 오른쪽에 중국이 내세운 티베트의 제11대 판첸 라마가 앉아 있다.


◆의전용 아우디가 무료 렌트인 까닭=지난달 28일 전 세계 불교계 수장들이 우시의 포럼장을 찾았다.

한국에서도 조계종·태고종·천태종·진각종·관음종 등 각 불교 종단 대표들이 참석했다. VIP를 위해 중국 측이 마련한 의전용 차량은 독일의 명차 아우디였다.

숙소 앞에는 수십 대의 아우디가 도열해 있었다. 중국쪽 행사 관계자는 “의전용 차량은 모두 무료로 대여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렌트카 회사에서 “큰스님이 탔던 차라면 경매에서 새 차보다 더 비싼 값에 팔 수 있다. 모든 차량을 무료로 빌려 주겠다”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큰스님이 (한 번이라도) 탔던 차는 액운을 막는다”고 믿는다고 했다. 중국인 특유의 강한 기복적 성향과 친불교적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중국에서는 불교의 맥이 끊겼다. 승려는 대부분 환속하거나 험한 산속으로 도망을 쳤다. 그렇게 60여 년 세월이 흘렀다. 그럼에도 중국인의 몸에는 ‘중국불교 특유의 유전자’가 지금도 흐르고 있었다.

지난달 28일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세계 화합과 모든 인연의 화합’을 주제로 ‘제2회 세계불교 포럼’이 열렸다. 50여 개국에서 온 불교 대표단 1200여 명이 개막식장을 향해 들어서자 양쪽에 도열한 중국 스님들이 환영의 뜻으로 꽃잎을 뿌리고 있다.

◆질보다 양, 중국 불교의 자화상=이런 성향을 바탕으로 중국 공산당 정부는 최근 불교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애초에 중국은 동북아 선(禪)불교의 종주국이었다.

붓다의 직설이 담긴 경전을 따질 때도 팔리어 경전, 산스크리트어 경전, 티베트어 경전, 중국어 경전 등 네 가지만 인정된다. 그만큼 중국의 불교적 역사와 토양이 풍부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신(神)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이념과 불교적 세계관의 ‘유연한 동거’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제2회 세계불교포럼’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원은 굉장했다.

현장 법사가 인도에서 불경을 가지고 오다 들렀다는 우시의 링산(靈山)에 2400억원을 들여 올해 초 엄청난 규모의 범궁(梵宮)을 지었다. 입구에 들어선 방문객들이 탄성을 터뜨릴 정도였다. 어찌 보면 전세계 가톨릭의 중심인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을 연상케 했다.

세계 불교의 주도권을 거머쥐고 구심점에 서고자 하는 중국 정부의 야심이 느껴졌다. 물량 공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링산 범궁 옆에는 88m 높이의 청동불 입상이 서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청동불 입상이었다. 범궁에서 보면 마치 산등성이 너머로 거대한 로봇이 서 있는 듯했다. 범궁 안의 포럼장과 공연장, 전시장의 규모도 만만찮았다.

이처럼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불교의 하드웨어는 막강했다. 양적인 측면에선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질적인 측면은 달랐다. 규모는 ‘세계 불교 포럼’이란 명칭에 걸맞았으나 내용은 빈약했다. 포럼 참가자들에게 주어진발표 시간은 각 6분에 불과했다.

발표 내용도 개괄적인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세계 불교학계의 주목을 받기에는 어림도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껍데기는 크고, 속은 텅 빈 격이 되고 말았다. 내용적인 측면보다는 대외적인 과시에 세계불교포럼의 ‘방점’이 찍힌 듯한 인상이었다. 그게 또한 현재 중국 불교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하나의 중국과 불교=올 포럼은 중국과 대만, 홍콩이 공동 주최했다. 전반부는 중국 우시에서 열렸고, 후반부는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열렸다. 양안(兩岸) 관계의 긴장을 풀고 ‘하나의 중국(One China)’을 알리자는 중국 정부의 취지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포럼에 참가한 법산(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스님은 “이번 포럼은 중국과 대만, 양측이 함께 여는 첫 불교 행사다.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중국의 이해와 본토의 불교 신자가 늘어나길 바라는 대만의 이해가 서로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세계불교포럼에는 제11대 판첸 라마인 기알첸 노르부(19)도 참가했다. 그는 티베트 독립 등에 관해 중국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영어 연설을 하기도 했다. 행사장에서 판첸 라마에겐 겹겹의 경호원이 붙었다. 이 때문에 판첸 라마는 이동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포럼 참가자에게 ‘하나의 중국’을 재각인 시키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로도 비쳤다. 중국은 2년마다 ‘세계불교포럼’을 열 계획이다. 아울러 불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도 강화할 전망이다. 그러나 불교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맥이 흐르는 생명체다. 불가에서 말하는 ‘법맥을 잇는다’는 표현은 빈 말이 아니다. 맥이 흐르지 않는 불교는 진정한 불교가 아니다. 중국 불교의 숙제도 여기에 있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50년간 초토화됐던 불교의 맥을 어떻게 되살릴지가 관건이다. 중국 불교가 진정 되살아날 때 세계불교포럼에도 권위가 실릴 것이기 때문이다.양적인 권위가 아니라 질적인 권위 말이다.

우시(중국) 글·사진=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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