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누구 위한 '접경' 개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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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통일을 대비한 각종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통일과 별 관련이 없는 사안도 통일대비란 명목으로 추진되고 있다.

최근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된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접경지역 지원법안' 이 대표적인 사례다.

비무장지대 민통선 주변 접경지역을 '통일전진기지' 로 개발해두자는 것이 법안 제정의 취지다.

즉 통일후 예상되는 북한의 유동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이 지역을 미리 개발해두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으로부터의 유동인구 수용과 이 접경지역 개발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통일에 따른 인구 이동은 고용이 가능한 서울등 대도시 중심으로 집중될 것이며 접경지역의 수용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의 지배적인 예측이다.

한 논문에 따르면 통일후 5년간 최소한 1백50만명 정도의 북한 인구가 남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고 제출된 법안이 이러한 유동인구를 수용할 정도의 대규모 산업지대로 접경지역을 개발하자는 내용도 아니다.

결국 법안의 진짜 의도는 군사시설과 관련한 각종 규제에 묶여 온 민통선 인근지역 주민들에게 개발 이익을 돌려주자는 것이다.

또 하나의 주목거리는 이 법안이 지니고 있는 힘이다.

수도권정비계획법등 국토계획과 관련된 상위법에 우선할 뿐만 아니라 산림법.하천법등 25개 관련법에 걸렸던 문제들은 자동 해결되게 돼 있다.

또 지방양여금.지방교부세.개발부담금등을 비롯한 국고보조금까지 따라붙는다.

그러나 통일을 대비해 큰 의미가 없다면 이 시점에서 왜 접경지역의 개발이 전체 국토계획이나 수도권계획을 무시하고 추진해야 할만큼 시급한 것인지 의문시된다.

현재 민통선 인근지역의 땅은 이미 70% 이상이 외지인 소유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제안된 법안에 따라 접경지역이 개발된다면 무계획적인 소규모 난개발만 초래되고 개발 이익을 기대한 땅값 상승만 불러오게 될 것이 뻔하다.

개발을 통해 땅값을 올리는 것이 주민들에게 어떤 편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접경지역 개발이 국토이용 차원에서 어떤 장점을 갖는지 면밀한 검토가 법안 제정에 선행돼야 할 것이다.

더구나 비무장지대는 전세계에서 보기 드문 생태보존 지역이다.

이런 지역을 어떻게 보존하고 이용할 것인지는 철저한 조사와 계획이 우선해야 한다.

또 접경지역 개발이든, 낙후지역 개발이든 전체 국토계획이나 수도권계획의 틀 안에서 접근하는 것이 순리다.

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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