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쓰레기 우체통' 시민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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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m 남짓한 빨간 색깔의 보잘것없는 금속통이 우체통이다.

그러나 이 통은 개인의 간곡한 사연과 국가의 중요문서를 담아 전달하는 우리의 소중한 정보전달 체계다.

시민이라면 누구나 아끼고 소중히 다뤄야 할 국가기반 시설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우체통이 최근 들어 쓰레기통으로 둔갑하고 있다는 기막힌 사실이 드러났다.

〈본지 10일자 23면 참조〉 특히 젊은이들의 왕래가 많은 서울의 대학로 부근이나 신촌.강남역 일대의 우편물을 수거하는 집배원들은 쓰레기 봉투를 함께 들고 다녀야 할 형편이라는 것이다.

우체통을 열면 담배꽁초.스타킹.종이컵.신문지.우유병이 한꺼번에 쏟아진다고 한다.

우체통인지 쓰레기통인지 종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타고 있는 담배꽁초를 집어넣어 편지에 불이 붙고 마시다 만 음료 캔에서 물이 흘러 주소지 글자가 번지는 바람에 배달 자체가 어려울 때도 있다는 것이다.

우체통 뿐인가.

공중전화.공중변소 등 공중이 드나드는 곳 어디든 성한 곳이 없고 쓰레기가 나뒹군다.

우리 사회의 시민의식이 고작 이것밖에 안된다는 현실반영이다.

겉으로는 세계화를 논하고 시민이 주도하는 시민사회를 떠들면서도 손에 든 쓰레기를 우체통에라도 슬쩍 집어넣는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시민의식 부재의 사회를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집 앞에 쓰레기장이 들어서면 목숨을 내걸고 싸우는 용기 (?

) 를 보인다.

물론 법으로도 단속할 수 있다.

쓰레기 투여는 폐기물관리법으로, 우편물 손상은 우편법을 적용해 단속할 수 있을 것이다.

꼭 법으로 단속해야 고쳐진다면 이야말로 민주시민의 자질이 없다.

법 이전의 시민정신 문제이고 생활의 상식일 것이다.

거리에 쓰레기통이 없으니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없애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쓰레기 자체를 줄이기 위해선 쓰레기통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신의 쓰레기는 제집까지 옮겨가 버리라는 것이다.

공중전화.공중변소.우체통을 아낄줄 아는 마음이 곧 시민의식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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