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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 돌파구 - 중국 내수시장 <하> 변화에 적응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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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국에는 요즘 ‘가전하향(家電下鄕)’ 특수가 있다. 농민이 TV와 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사면 가격의 13%를 정부가 지원해 준다. 중국 정부가 올 2월부터 경기 부양을 위해 쓴 정책 중 하나다.

지난달 25일 중국 광시(廣西)자치구 난닝(南寧)의 최대 쇼핑센터 난닝백화점 가전매장. 평일 오전인데도 고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붉은색 현수막에 쓰인 ‘가전하향 상품’이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얼핏 보기에도 농사꾼인 듯한 고객이 가격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이 매장 점원인 장융(張勇)은 “TV는 하루 평균 10대 정도, 세탁기는 7대 안팎 팔린다”며 “가전하향 정책으로 매출이 약 30% 늘었다”고 말했다. 가전하향은 2000위안(약 40만원) 이하 저가 품목이 대상이다. 한국 업체들은 주로 고가제품을 수출하기 때문에 중국의 가전하향 정책과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울산광역시에 있는 금호석유화학 공장은 경기침체 속에서도 풀가동되는 생산라인이 하나 있다. 범용 합성수지인 ‘HIPS(High Impact Polystyrene)’ 라인이다.

박찬 금호석유화학 광저우(廣州)지사장은 “HIPS는 저가 가전제품 원료로 많이 쓰인다”며 “중국의 가전하향 정책으로 값싼 가전제품 특수가 일면서 HIPS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저우 지사는 지난해 본사로부터 HIPS를 월평균 500t 정도 수입했었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2000t에 달한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도 요즘 가동률이 100%에 달한다. 중국의 가전하향 정책 영향으로 가전제품 수요가 급증해 주문이 폭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나비효과(중국 베이징의 작은 기상 변화가 뉴욕에 폭풍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이론)’를 연상케 한다. 요즘 중국의 경제정책이 한국 기업에 긍정적인 파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한국 기업이 중국으로 수출한 부품(원재료)의 최종 수요처가 주로 미국·EU 등 서방 시장이었다. 중국에서 조립·가공한 뒤 제3국으로 많이 수출됐다. 그러나 세계적 경기침체로 이들 시장이 위축되면서 최종 소비자는 ‘뉴욕 월마트(미국)’가 아닌 ‘난닝 백화점(중국)’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이 이제는 중국 내수시장을 눈여겨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칭다오(靑島) 시내에 자리 잡고 있는 스타스포츠의 현지법인 신신체육용품은 ‘star’ 브랜드로 잘 알려진 공 생산업체다. 이 회사가 지난해 생산한 각종 공은 약 360만 개로 하루 1만 개꼴로 팔려 나갔다. 이 회사도 세계적 경기침체로 위기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0%가량 줄었다. 그러나 이 회사 공장은 지금도 정상 가동 중이다. 수출은 줄었지만 대신 중국 내수시장이 살아나 돌파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조문형 법인장은 “생산량 중 3분의 1을 중국 내수시장에 판매하고 있다”며 “베이징 올림픽 이후 주문량이 전년 대비 15% 안팎 증가했다”고 말했다. 조 총경리는 “스타스포츠 칭다오 공장을 키워 준 것은 미국 시장이었으나 글로벌 경제위기 때 회사를 구해준 것은 중국 내수시장인 셈”이라고 말했다.

모든 기업에 중국 시장에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기술력이다.

지난달 26일 선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09년 국제 반도체 전시회’. 이곳에서 만난 박해강 크로스반도체 사장은 “말레이시아계 화교 기업인 유엘텍과 250만 달러의 스마트카드 연구개발(R&D)투자 유치 계약을 체결했다”며 흥분했다. 그는 “기술력 하나로 현지 시장에 진출한 셈”이라고 말했다. 박종식 KOTRA 광저우 무역관장은 “경쟁력 있는 우리나라 기업에 중국은 확대된 내수시장이나 마찬가지”라며 “문제는 이 시장을 뚫을 수 있는 기술력이 있느냐 업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 상하이·난닝·광저우=한우덕 기자, 베이징·옌타이=염태정 기자, 칭다오=장세정 특파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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