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수전·봉정사 영선암등 '건축 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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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돌계단은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절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줍니다.

진입로와 일치하지 않고 비스듬히 서있는 절의 공간배치는 절에서 앞산에 이르는 넓은 공간이 마치 정원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김봉렬교수 (예술종합학교) 의 설명에 조성룡 (조성룡 도시건축대표) 씨가 한마디를 덧붙인다.

"현대건축물 중에서 공간을 이토록 절묘하게 다룬 건축물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우리 도시들이 가진 공간배치의 부적절이라는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여기서 찾아봅시다."

이어서 낙동강변. 병풍같은 산이 물 흐르는 방향으로 기울어진 것이 바라보이는 곳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병산서원 (屛山書院) .그곳에 도착한 이들은 너도나도 마루 안쪽으로 걸터 앉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시선을 뺏겼다.

"건축물은 겉모습이나 장식만 화려해서는 안됩니다.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중심으로 설계해야 합니다."

민현식교수는 이렇게 말하며 대청마루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그곳은 서원 유사 (有司)가 앉던 곳. 그곳에 앉으면 앞쪽 누각이 강과 산과 하늘을 가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민교수는 그 위치야말로 "이 건물을 설계한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 라고 말했다.

"논리와 인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던 유학자들은 이처럼 자연이 병풍처럼 보이게 건물을 설계한 것입니다."

민현식 교수의 말에 김인철씨도 한마디 거든다.

"60년대에 건축을 배운 우리는 서양에서 받아들인 건축지식만 가지고 건물만들기에만 급급해 건물로 시대의 정신을 표현할 생각을 못했습니다.

자연을 철저하게 재단하고 응용하면서 시대정신을 표현한 병산서당은 현대 건축에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안동 봉정사에 닿은 건축가들은 고려중기에 지어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보다 조선중기에 지어진 검소한 건물인 영선암에 더욱 애정어린 눈길을 주고 있었다.

일반인이 보기에 화려하지도, 멋있지도 않은 이 자그마한 집을 두고 건축가들은 왜 그토록 사랑을 표시하는가.

"작은 마당도 평평하지 않고 두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으며 나무와 건물에 의해 마당에는 항상 빛과 그림자가 교대로 나타나도록 설계됐습니다.

건물 밖에서는 안쪽이 잘 보이지 않고 안에서는 밖의 훵한 공간에 보입니다.

선불교의 사상을 건축물과 그 배치로 표현한 것입니다.

선불교 건축물의 극치라는 말 말고는 달리 이 건물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건물을 만든 옛 건축가를 생각하면 그저 부끄럽기만 합니다."

승효상씨의 말에 건축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봉정사를 내려오는 길에 김원씨는 이런 말을 했다.

"고건축물의 놀라운 힘과 멋을 오늘에 되살릴 수 있으면 대단할 겁니다.

아마 그것은 한국건축을 넘어서 환경을 생각하는 21세기 새로운 건축개념이 될지도 모를 겁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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