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전문계고의 본령은 진학보다 취업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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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전문계고(옛 실업고)의 취업률을 높이려는 다방면의 정부 지원책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계고 졸업생이 취업보다는 대학 진학으로 급격하게 쏠리는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올해 취업 중심 교육을 하는 전국 전문계고 200곳에 200억원의 특별교부금이 지원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취업률 향상 아이디어를 공모해 올해 지원 대상 학교 24곳을 선정하고, 내년부터는 취업률 향상도를 평가해 지원 학교를 정할 계획이다. 전문계고 졸업 후 취업하면 입대를 4년 연기해 주고, 기업의 사내(社內)대학 설립도 용이해진다.

전문계고의 설립 취지는 산업현장에 필요한 맞춤형 인재 양성이다. 그러나 최근 전문계고 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이 취업률을 월등히 앞지르면서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전문계고 학생의 진학률과 취업률은 2002년 49.8%와 45.1%로 엇비슷했지만 6년 만인 지난해엔 72.9%와 18.9%로 네 배의 격차를 보였다. 전문계고 취지를 감안할 때 이런 과도한 진학률은 정상이 아닐 뿐더러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학생들이 전공을 내팽개치고 학원에서 입시공부에 매달리는 판에 어떻게 전문계고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겠는가.

이런 점에서 정부의 전문계고 취업률 끌어올리기 정책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졸업 후 곧바로 관련 업계로 취업할 수 있는 실용적인 교육과정부터 확보해야 한다. 우선 내년 3월 문을 여는 19개 마이스터고를 전문계고의 성공모델로 키워나가는 게 첫째 과제다. 그러나 기업의 호응 없이 전문계고 취업률 높이기는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기업이 전문계고 졸업생의 채용을 늘리고, 새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삼성이 전국기능대회에서 입상한 전문계고 졸업생들을 대거 채용하는 게 한 예다.

전문계고 졸업생의 취업 유도를 위한 또 다른 방법 중의 하나는 사내대학의 활성화다. 현재는 삼성중공업과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정도지만 앞으로 기업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기업 간 컨소시엄 형태의 사내대학이 가능해지고 협력업체 직원도 입학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기업이 기존 대학에 계약학과를 설치하고 주말이나 온라인을 이용해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도 방법이다. 동의과학대처럼 전문계고 졸업생이 취업과 동시에 대학의 온라인 강의를 듣고 학위를 따게 하는 것도 바람직한 모델이다.

전문계고 졸업생이 지나치게 대학으로 몰리는 현상의 기저에는 고졸과 대졸자 간 임금격차와 차별, 학력 중시 풍조 등에 대한 불안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근본적인 해법 구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학력보다는 기술과 기능을 중시하는 기업의 행태 변화가 그 실마리인 것은 틀림없다.